[정철우의 4언절구]채상병과 고스톱에 얽힌 추억

by정철우 기자
2007.07.18 09:37:26

사진=두산베어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2003년 여름 어느날, 광주 KIA-한화전이 끝난 뒤 지기호 당시 한화 홍보팀 과장(현 매니저)의 차를 얻어타고 대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차엔 한 선수가 함께 타고 있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다음 원정지로 떠났지만 경기 후 2군행이 결정된 그는 홀로 짐을 싸 대전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유승안 당시 감독은 그를 두고 “재능은 있는데 독기가 없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데 그런 맛이 없다”며 불만을 터트리곤 했었다. 아마야구 넘버 원 포수였던 ‘당시 유망주’ 채상병(28.현 두산)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광주서 대전까지 가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비까지 내려 괜히 더 청승스러웠다. 그러다 지 과장(그는 매니저 생활을 오래 해 선수들과 친분이 두텁다)이 입을 열었다.

별다른 할 말이 뭐 있었겠는가. 그저 너무 낙담말고 다시 힘을 내보라는 내용이었다. 채상병은 별 말이 없었다. 그저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지 과장이 “어디 문자 보내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뇨 고스톱 치는데요.” 그리고 또 한참동안, 아니 대전에 도착할때까지 차 안엔 고요만이 감돌았다.

‘고스톱’이란 단어가 나오는 순간 유 감독의 성난 얼굴이 함께 오버랩됐다. 유 감독이 말한 ‘독기’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땐 ‘얼마 못 버틸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해버렸다.

채상병은 그해 시즌이 끝난 뒤 두산으로 팀을 옮겼다. 재활중이던 롯데 문동환이 FA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에 건너간 뒤 그와 트레이드 됐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문동환의 부활을 점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저 그런 트레이드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문동환은 한화에서 보란 듯 재기에 성공했고 이내 에이스 역할까지 해내기에 이른다. 그럼 채상병은?

김경문 두산 감독은 “꼭 한번 키워보고 싶은 재목”이라고 칭찬했지만 금세 성장곡선을 그리지는 못했다. 병역 파동에 휘말려 갑자기 군에 입대하게 됐다.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한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5월6일 병역의무를 끝낸 채상병은 며칠 뒤 당당히 1군에 합류했다. 휴가를 모아뒀다가 소집 해제 전부터 팀 훈련을 함께 했던 덕이다. 물론 그동안 꾸준한 개인 훈련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자리 하나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주전 포수 홍성흔의 부상 공백을 훌륭히 메워내며 팀의 상승세에 1등 공신이 됐다. 특히 선두 SK와 마지막 3연전서 그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13일 경기서 결정적인 도루를 잡아낸 것은 물론이고 수 없이 많은 블로킹을 실수 없이 해냈다.

이제 가능성을 넘어 실전용 포수로 손색이 없음을 확실히 각인시킨 전반기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두산의 후반기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선수가 됐다.

문동환이 잘 던질때마다 쏟아졌을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적지 않은 공백.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어떤 노력을 했을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채상병은 “한화때와 기술적으로 달라진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됐다. 꾸준하게 경기에 나가다보니 여유가 생기고 코치님이나 감독님이 믿어주셔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땐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하지만 이젠 너무 하고 싶어졌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4년 전 그가 왜 말 없이 그 작은 휴대폰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며 오래도록 고스톱만 하고 있었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옅은 지식으로 쉽게 판단해버린 나의 어리석음이 많이 미안해졌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의 처량함속
말도없이 두드리던
휴대폰속 고스톱판

울고싶은 마음대신
표현한걸 이해못해
지레혼자 무시했던
나의오만 용서하길

고스톱의 대원칙은
전국공통 낙장불입
신속정확 손놀림과
빠른판단 기본인데

어찌보면 안방마님
필수덕목 닮아있네
그때아픔 잊지말고
최고포수 거듭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