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거리' 김옥빈 "고민 많던 나, 비우고 채우는 법 배웠다"
by강민정 기자
2014.11.26 07:15:02
|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전설적인 소매치기의 딸이자 소매치기 전과 3범인 유나 역을 열연한 배우 김옥빈이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방인권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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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극 ‘유나의 거리’는 소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탁월한 김운경 작가와 임태우 PD가 만든 드라마였다. 20여 년 전 ‘서울의 달’을 쓴 김운경 작가는 당시의 따뜻한 감성을 되살려보고자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남의 지갑을 훔치는 일이었던 유나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웃과 어울리는 과정을 보며 30~60대 남녀시청자도 울고 웃었다. ‘유나의 거리’는 익숙한 삶 속에 벽을 치고 사람과 어우러지지 못했던 유나가 넓고 곧은 길로 나와 가족애와 사랑, 우정을 깨우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 거리의 주인공은 배우 김옥빈이었다. 출연작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과 강한 연기를 보여준 그가 ‘유나의 거리’를 차기작으로 고른 선택은 의외였다. 그는 ‘유나의 거리’ 시나리오를 받고 “이건 내 작품이다”는 자신감까지 들었다. 특정 이미지에 갇히는 일을 우려했던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에서도 김옥빈의 ‘유나의 거리’ 출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다른 사람은 ‘네가 이걸?’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이 작품 완전 내것인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상적인 연기, 과한 설정이나 비현실적인 캐릭터보다 유나 같은 사람을 연기하고 싶었거든요.”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자신에 찼던만큼 보여주기란 어려웠다. 영화 ‘박쥐’, ‘시체가 돌아왔다’, ‘다세포소녀’ 등 그 동안 작품에서 익혔던 연기와 많이 달랐다. ‘유나의 거리’는 그가 마냥 좋아 즐길수만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나를, 내 생활을 잊고 살았다는 걸 ‘유나의 거리’ 덕에 알았어요. ‘밥먹었어?’ ‘잘 잤어?’와 같은 아주 평범한 인사를 평소에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잊고 있었나봐요.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았지만 평소 나의 말투, 나의 일상은 막상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유나의 거리’를 하면서 날 것, 살아있는 것, 그런 것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게 됐죠.”
| “김운경 작가님 덕에 비우는 법, 채우는 법을 알았어요.”(사진=방인권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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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5,6회차에 접어들었을 때 김옥빈은 ‘이대론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3줄 남짓 되는 유나의 극중 프로필을 줄줄이 읊으며 “이게 전부였다니까요?”라고 여전히 답답해 하던 김옥빈은 그 답을 김운경 작가에게서 찾았다고 했다.
“작가님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잘 해내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유나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백그라운드를 듣고 싶었거든요. 작가님은 ‘그냥 비우고 연기해’라고 하셨죠. 설정에 얽매이지 말고, 규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데뷔 10년을 내다보고 있는 김옥빈은 그때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연기에 얼마나 많은 수식을 적용하고 계산해왔는지 돌아보게 됐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생활 연기의 무한한 매력을 알게 해준 ‘유나의 거리’는 김옥빈에게 배움 그 자체로 통했다.
“설정은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이 캐릭터를 뭐라고 정해두는 순간 그것은 잘못된 거였어요. 작가님이나 감독님의 새로운 설정, 또 다른 이야기에 부딪혔을 때 내가 생각했던 캐릭터와 다를 경우 난 또 해매게 되잖아요. 연기는 비워야 할 수 있다는 거, 그래야 매회 새로운 대본, 연출에도 하나의 인물을 있는 그대로 연기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김옥빈은 ‘유나의 거리’로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불행의 아이콘인줄 알았던 유나가 누구보다 행복한 결말을 맞으며 ‘이게 누려도 되는 호사인가’ 늘 불안했다는 그는 “이런게 알고보면 진짜 인생”이라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원래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20대 초반엔 ‘내가 과연 뭐가 될까’ 걱정했고, 지금은 ‘좋은 배우가 못 되면 어쩌지’ 고민하곤 해요. 그런데 지금을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직 실천이 어렵지만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면 ‘앞으로 얼마나 불행해지려고 그러나’라는 생각은 잠깐의 의심으로 둬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 계속 행복했음 좋겠다’는 꿈을 꾸는 김옥빈으로, 저도 많이 바뀌는 걸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