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관 "최저 속구, 기네스 기록은 없나요?"
by박은별 기자
2013.06.20 08:11:11
 | 유희관.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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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박은별 기자]두산 유희관은 ‘제구 아티스트’, ‘구속조절의 신’이라고 불린다. 최저 76km에서 최고 135km까지, 60km차이가 나는 구속을 넘나들며 160km에 가까운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들과 맞선다. 다윗과 골리앗처럼 팬들은 그를 보며 광속구 투수들과는 또 다른 쾌감을 느낀다. 유희관은 ‘느림의 미학’으로 올시즌 자신만의 새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유희관을 일약 스타덤으로 끌어올린 건 역시 70km대의 최고 느린 커브다. 사회인 야구에서나 볼 법한 그런 볼을 상대하는 타자들로선 어이가 없기 마련이다. 유희관은 그렇게 타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는 올시즌 825개의 공 중 터무니 없이 느린 이 공을 딱 3번 던졌다. LG 박용택(5월4일), 넥센 유한준(6월2일), 삼성 김상수(6월8일)까지. 70km대 느린 커브의 희생양(?)이었다. 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희관은 “이기고 있거나 주자가 없을 때, 2아웃 이후에 슬슬 던진다. 직구 타이밍에 던진다. 쳐봤자 많이 안나가니까 반발력도 없고, 칠테면 치라고 던지는 볼이다”고 귀뜸했다.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것도 물론이고 덤으로 팬서비스 차원에서 선택하는 구종이 바로 이 커브다. 그는 “팬서비스 차원도 있다. 한 번씩 던지면 팬들이 좋아하신다. 한준이 형한테 던진 후 이닝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기립박수가 나오더라. 남들처럼 똑같이 던졌으면 이슈가 안됐을텐데 공이 느린데도 막으니 화제가 되고 신기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팬들의 반응을 체크할만큼 마운드에선 그에게 여유가 넘친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김상수에게 던졌던 공은 너무 느려 전광판에도 구속이 찍히지 않았다고 했다. 한 50km정도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그의 투구를 지켜본 야구 관계자들의 예상. 그는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고 느린 볼 같은데 기네스북에 올라가야하는 거 아니냐. 최고 빠른 구속은 기록이 되면서 최저 구속은 왜 기록이 안되냐”고 웃으며 하소연했다.
스피드에 욕심이 없는 투수가 어디있을까. 힘있고 빠르게 포수 미트에 꽂히는 그 쾌락을 느끼기 마련. 그도 “구속에 욕심은 있다. 마음은 150km던지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한에서 최대한 빨리 던지고 기록을 세워갈 것이다”며 웃는다. 그는 스스로 한계를 지정해놓기 보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늘려갈 생각이다.
유희관은 두산의 선발투수로 연착륙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해 노경은이 두산의 신데렐라였다면 올해는 유희관이 그렇다. 중간투수에서 선발로 보직을 바꾼 후 더 진가가 돋보이고 있다. 올시즌 22경기에 나서 3승1패1세이브3홀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3.08.
그는 앞으로도 지금껏 싸웠던대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늘 맞서나갈 생각이다. 유희관은 “힘든 건 없다. 지치지도 않는다. 내 스타일이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아니고 맞춰 잡는 것이다. 볼이 느려 장타 부담은 더 있지만 내가 다 안고 가야할 부분이다. 안타를 맞는 것엔 두려움이 없다. 안맞을 순 없다. 맞는 건 신경쓰지 않는다. 안타를 맞은 후에도 다음 타자와 승부를 어떻게 할지만 생각한다”고 했다. “한결같이 욕심내지 않고 지금 이 상태로 해나가고 싶다”는 게 목표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20일 잠실 롯데전에서 중책도 맡았다. 전날(19일) 롯데전엔서 당한 패배를 대신 갚아줘야한다. 6위 두산으로선 5위 롯데와 승차(4게임)가 여기서 더 벌어지면 4강 진출도 장담하기 힘들어진다. 유희관의 호투가 절실한 이유다. 과연 유희관은 ‘제구 아티스트’, ‘구속조절의 신’라는 별명답게 호투로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