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로 본 골프 女傑..손자병법에 승리 비법 있다

by이석무 기자
2014.12.11 06:00:00

삼국지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적벽대전’ 골프에도 손자병법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손자병법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손무와 손빈이 대를 이어 저술한 고전이다. 무려 2500여 년 전에 지어진 책이지만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한 전술서였지만 현재는 훌륭한 처세술서 또는 인생의 지침서로 인정받고 있다.

병법은 전쟁에서 적과 싸워 이기는 방법이다. 스코어를 다투는 골프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골프는 코스, 클럽, 날씨, 갤러리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시야를 넓혀 손자병법의 구절에 골프를 대입하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知皮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모두 이길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쌀로 밥 짓는 말처럼 당연하면서 동시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전쟁터에 나갈 때 장수는 병력과 지형, 화력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골프도 자신의 현재 컨디션과 비거리, 구질은 물론 코스, 장비의 특징까지 완벽히 꿰뚫어야 한다.

현재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지난 2012년에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제치고 PGA투어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다.

그런데 2013년 들어 기세가 크게 꺾였다. 한참 동안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나이키와 계약하면서 클럽과 볼을 모두 바꿨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장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골퍼와 장비는 한몸이다. 나를 모르고 경기에 나선 셈이었다. 결국 그해 1승도 거두지 못했다. 2014년 돌아온 매킬로이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새로운 장비에 완전히 적응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자신을 알게 된 매킬로이는 다시 최강자로 돌아왔다.

▲亂生於治 怯生於勇 弱生於强(난생어치 겁생어용 약생어강)

‘적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군의 질서정연함에 달려있고, 적을 두렵게 하는 것은 아군의 용기에 달려 있고, 적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군의 강함에 달려있다’. 손자병법 ‘병세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골프는 ‘멘탈 스포츠’라고 부른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마음이 흔들려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골프를 전쟁에 비유해보자.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군대의 조직력이 강하고 사기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26·KB금융그룹)의 별명은 ‘멘탈 갑(甲)’이다. 경기에 임하는 그의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멘탈이 강하다보니 큰 실수가 적고 트러블 샷에 능하다. 살얼음판 같은 연장전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특히 큰 경기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LPGA에서 통산 12승을 거뒀는데 그 중 5승이 메이저 우승이다. 정신력과 집중력에서 그를 따라올 선수는 없다.

박인비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드라이버 입스(불안감 때문에 드라이버 샷을 망치는 것) 때문에 고생했다. 한때 골프를 포기하는 것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시련을 이겨내면서 박인비의 멘탈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出其所不趨 趨其所不意(출기소불추 추기소불의)

‘적이 달려갈 곳을 공격하고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격해야 한다’. 손자병법 ‘허실편’에 나오는 문구다. 적의 약점을 노리고 공격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해석하면 자신의 약점을 적에게 노출하지 않고 약점을 지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재미동포 미셸 위(25·나이키골프.한국명 위성미)는 유명세에 비해 실력이 따르지 못했던 선수였다. 문제는 퍼트였다. 아무리 거리를 멀리 날려도 공을 홀컵에 집어넣지 못하면 ‘도루아미타불’이었다. ‘퍼트 못하는 선수’로 낙인이 찍힐 정도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지난해 퍼트 자세를 과감히 바꿨다. 몸을 ‘기역(ㄱ)자’가 되도록 구부렸다. 180cm가 넘는 장신의 몸을 우스꽝스럽게 구부리니 조롱이 쏟아졌다.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냉정한 비판도 나왔다. 그래도 미셸 위는 참았고 1년 기다른 끝에 결실을 얻었다. 2010~2012년에 라운드당 30개가 넘었던 퍼트수는 지난해 29.98개로 줄었다. 올해는 29.92개로 더 낮아졌다.

장타는 환호를 부르지만 퍼트는 우승을 부른다. 달라진 퍼트 실력은 곧바로 성적으로 이어졌다. 4월 LPGA 롯데 챔피언십에서 3년 8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데 이어 6월에는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당당히 메이저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자야말로 용병술이 가장 뛰어난 자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명언이다. 골프에서 승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올해 KLPGA 상금왕에 LPGA 메이저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김효주의 가장 큰 매력은 ‘한결같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스윙은 흔들리지 않고 표정도 그대로다. 며칠에 걸쳐 라운드를 하다 보면 고비가 분명 찾아온다. 하지만 김효주는 늘 똑같다. 조용히 치는 것 같은데 어느덧 순위가 선두에 올라 있는 경우가 많다.

김효주는 ‘지화자조타’라는 5계명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다. ‘지’는 ‘지금 행동하라’, ‘화’는 ‘화장길 갈 때와 나올 때를 같이하라’, ‘자’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라’, ‘조’는 ‘조준하고 공략하라’, ‘타’는 ‘타인을 의식하지 마라’이다. 골프에만 집중해온 19살 소녀는 이미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고수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