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8.08.28 08:55:49
극작, 이렇게 해라...결말은 아무도 모르게
소재는 누구나 알도록...희망을 모두가 느끼게
[조선일보 제공] 1982년 토니상을 수상한 뮤지컬 《나인》(Nine)의 각색자 마리오 프라티(Fratti·81)는 "《나인》 극본은 90쪽을 썼는데 결국 남은 것은 20여쪽"이라며 "그것이 희곡과 뮤지컬 극본의 차이"라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 극본의 경우 노래가 들어와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을 많이 비워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프라티는 1963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다. 헌터 칼리지 명예교수(이탈리아 문학)이기도 한 그가 29일 서울문화재단 세미나실에서 '희곡과 뮤지컬 창작을 위한 극작'을 주제로 강의한다. 제1회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김명화,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쓴 장유정 등 국내 작가들과의 토론, 일반 참가자들과의 Q&A 순서도 있다. 특강에 앞서 26일 광화문에서 프라티를 만났다.
《나인》 《마피아》 등 70여편에 이르는 프라티의 희곡들은 19개 언어로 번역·출판됐고 24개국 600개 극장에서 공연됐다. 《갈매기》 《세자매》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Chekhov)는 왜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냐는 질문에 "내 안에 노래가 많고, 다 부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프라티는 그 표현을 빌려 "말할 게 있으니 쓴다"고 했다.
그가 정의하는 '극작의 3대 요소'는 좋은 이야기, 탄탄한 구조, 예측 불가능한 엔딩이었다. 특히 엔딩을 강조했다. "관객이 짐작할 수 없는 깜짝 놀랄 만한 것(big surprise)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쇼 닥터(공연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게 좋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글감인가? 프라티 자신은 "3분의 1은 자전적인 것, 3분의 1은 역사, 3분의 1은 상상을 통해 소재를 구한다"고 했다. 좋은 소재로는 《햄릿》을 예로 들었다. "보편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 작가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운명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으로 출발했다는 그는 대화(dialogue)의 힘을 발견한 뒤 극작가로 방향을 틀었다. 프라티는 "희곡에서 대화는 사람들끼리 소통하게 하는 무기"라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임신 9개월만에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자전적 영화 《8과 1/2》이 원작인 《나인》은 작곡가와 작업하는 시간만 7년이 걸렸다." 그는 "기다리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프라티는 "사람은 모두 가면(mask)을 쓰고 산다"는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Pirandello)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의 가면은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하고 늘 평정심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그것이 학생들에겐 좋은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프라티는 "연극은 사회의 희생자인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피란델로와 아서 밀러(Miller)가 말했듯이 "극에는 희망의 불꽃이 있어야 하고 등장인물 중 적어도 한 명은 사회의 진보를 믿는 낙관주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