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석무 기자
2019.07.04 06:00:00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이제 학생 선수들은 학생을 포기하든, 선수를 포기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 같아요” 경기도 모 고등학교의 한 운동부 지도교사의 하소연이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학교 체육부들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각 학교가 잇따라 체육부 해체를 결정하거나 고려하는 중이다. 지난 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2차 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그 흐름이 더 뚜렷하다.
최근 경기도 모 고등학교의 복싱부는 내년 해체 예정 통보를 받았다. 부천의 한 여자 중학교는 탁구부 창단을 추진하고 선수까지 선발했다가 무효화 했다. 유소년 축구 명문으로 이름을 알린 전남 순천의 한 초등학교도 학생수 감소를 이유로 해체를 결정했다.
이는 작은 예일 뿐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한국 스포츠의 뿌리였던 학교 운동부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국가대표 또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를 꿈꾸던 많은 어린 선수들이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포츠 혁신위 권고안의 핵심은 ‘학교 스포츠 정상화’다. 경기 준비만 하는 학생선수들은 최소 학력을 갖추고, 입시 준비만 하는 일반학생들은 최소 운동능력을 갖추도록 학교 스포츠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 선수들의 학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혁신위 권고안의 취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와 승리지상주의 등의 목표 속에 학생 선수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기본적인 인권, 특히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권고안의 뜻을 반대하는 이가 없다.
문제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학기 중 학생선수의 주중 대회 대회 참가 금지, 정규 수업 후 훈련 실시 의무화, 운동부 합숙소 전면 폐지, 소년체전 폐지 등은 현재 스포츠계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탁상공론 대책이라는 지적이 높다.
권고안이 담고자 한 내용은 학교 체육부의 ‘정상화’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학교 체육부의 ‘고사’다. 스포츠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나온 방안이다 보니 현장에선 우려와 혼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고등학교 일선 교사는 “혁신위 출범 이후 많은 학교에서 이때다 싶어서 운동부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많아 걱정된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학교 체육부가 수년 안에 거의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학교 운동부가 해왔던 역할을 앞으로는 스포츠 클럽에서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학교 운동부가 학교라는 공교육이라면 현재 시스템의 스포츠 클럽은 학원 등 사교육이다. 사교육은 당연히 돈이 든다. 학부모와 선수의 부담이 크다. 경제적 여건이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은 운동을 시작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중학교 1학년 수영선수를 아들로 둔 한 학부모는 “스포츠 클럽은 기본적으로 수십만원 대 회비를 내고 대회 참가 비용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며 “선수 한 명을 스포츠 클럽에 보내는데 1달에 아무리 못해도 100만원 이상은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혁신위는 점령군이 아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니 받아들여라 식의 강요는 안된다. 학교 스포츠 개혁은 스포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현장의 실상이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뿌리 내리기 어렵다. 혁신위 권고안이 나올 때 마다 체육인들이 반발하는 것은 현장과의 소통이 안됐다는 반증이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데 아예 외양간을 불태우는 것은 곤란하다. 학교 운동부가 이대로 축소되고 사라진다면 류현진이나 손흥민의 활약도, U-20 축구대표팀의 성과도 역사 속의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