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꿈꾸는 최고의 일탈? 영화 같은 로맨스"(인터뷰)
by박미애 기자
2012.01.12 08:24:21
"내가 꿈꾸는 최고의 일탈은 `비포 선라이즈` 같은 로맨스"
"기부는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나를 성숙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힘"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2일자 28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 김태희는 데뷔 후 지금까지 한 결처럼 배우가 되기를 고집해왔고 노력해왔다. 한때는 연기력 때문에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물론 `망설였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김태희는 4년 전 영화 `싸움`으로 만났을 때 "연기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인 것 같다"고 말한 대로 배우의 운명을 거머쥐었고 점점 더 배우의 빛을 내고 있다.
김태희는 얼마 전 종방한 일본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로 또 한 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지난해 `마이 프린세스`로 로맨틱코미디에 첫 도전한 그녀는 일본 드라마로 또 한 번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이와 관련 그녀와 최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글에서 그녀의 진중함과 솔직함이 묻어났다.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공주 이설, `나와 스타의 99일`에서는 톱배우 한유나. 여배우라면 꼭 한번쯤 해보고 싶을 역할을 연이어 꿰찼다. 어떻게 하게 됐나?
▲`마프`(마이 프린세스)는 1, 2부 대본을 읽자마자 욕심이 났다. 이설의 밝고 톡톡 튀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매료됐기 때문에. `나스구`(나와 스타의 99일)는 일본 드라마로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 한유나라는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이설과 한유나, 김태희와 잘 어울렸다. 맞춤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두 작품이 로맨틱코미디물이어서 그런지 연기를 하면서 김태희도 밝아진 것 같은데.
▲`나스구`는 일단 설정이 내 실제 상황과 많이 비슷했다. 한국에서 일본 활동을 하러 온 여배우라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원래 모습이 은근슬쩍 나온 것 같다. (한유나가) 겉으로는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는 여배우이지만 집에 들어서면 그 순간 긴장을 확 풀고 이미지와 딴판인 모습으로 돌아간다든지, 자신을 아무도 못 알아보는 곳에서 일탈을 꿈꾼다든지 하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이설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개월 간 연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설과 성격이 비슷해진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나와 스타의 99일`은 김태희의 실제 모습이 많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한유나가 보디가드(니시지마 히데토시 분)의 눈을 피해 호텔을 빠져나갈 때의 차림새는 가끔씩 인터넷에 올라오는 김태희의 `직찍` 모습과도 흡사하더라. 한유나처럼 일탈을 꿈꾸기도 하나? 언제 그런 기분을 느끼나?
▲일본에서는 모자 쓰고 안경 쓰면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지만 한국에서는 가까이 다가서면 다 나인 줄 안다. 그래서 아무리 변장해도 다음 날 신문에 날 만한 일은 감히 못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확실히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타지에서 만난 두 여행자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한유나가 술을 참 맛있게 마시던 모습이다. 실제로는 어떤가? 술을 좋아하는 편인가?
▲가끔 마음이 괴로울 때 술의 기운이 그걸 완화시켜주지 않을까 생각은 하지만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술자리에서는 분위기 깨지 않을 정도 마시지만 정신은 꼭 차리고 있으려 한다. 하지만 얼굴이 심하게 빨개져서 다들 초반에는 술을 몇 잔 권해도 얼굴 보고 놀라서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되게 흉측해지나보다.
-말이라는 게 억양, 발음, 장단 등에 따라 뉘앙스도 다르고 뜻도 달라지기 때문에 외국어 대사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자연스러웠다. 오래 전부터 공부를 해왔나?
▲일본 진출을 결정하게 된 건 `마프` 촬영 직전이었다. `마프` 촬영 전 3주 정도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촬영이 시작돼 바빠져서 아예 손을 못 댔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촬영 때 체력을 다 소진해 근 두 달 간 아무 것도 못 했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어에 대한 위기감이 찾아왔다. 학창 시절 때 벼락치기의 달인이었는데 역시 공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급하게 머리에 넣은 건 다시 쉽게 빠져나온다는 거.
사실 그냥 암기하는 것과 암기한 것을 감정을 담아서 연기로 표현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모국어처럼 자연스러운 뉘앙스를 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일본인 매니저들, 일본 소속사 배우들, 그리고 통역사들까지 정말 많이 도와줬다. 내가 일본어로 연기하면 이 억양과 발음이 감정을 전달하는데 거슬리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체크를 받았다. 난 그것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 판단할 수 없어서 연기하고 난 후가 너무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같이 연기한 니시지마 히데토시상, 사사키 쿠라노스케상, 그리고 같은 소속사 배우인 사쿠라바 나나미짱. 이 훌륭한 세 배우들도 나를 정말 많이 배려해주고 도와줬다.
-상대배우인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연기 호흡은 어땠나?
▲니시지마 히데토시상은 현장에서 항상 웃고 주변 스태프들을 잘 챙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니시지마 히데토시상은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녀서 유나로서 내가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 배우로서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서로 언어가 안 통하는 데에도 연기호흡을 맞추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드라마 때문에 한 동안 일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많이 적적했을 것 같은데 외로움은 어떻게 달랬나?
▲외로울 틈도 없는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는 날까지 이런 저런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창 드라마 촬영 중이던 (지난해) 11월에는 한국에 다섯 번 정도 들어왔다. 1주일에 한 번은 국내 스케줄이 있었던 셈이다. 일본과 비행거리가 두 시간 밖에 안 되지만 그렇게 자주 왔다 갔다 하니 너무 힘들더라. 한국에서의 일도, 일본에서의 일도 내가 더 여유 있게 준비하고 즐기면서 촬영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다. 늘 피곤에 `쩔어서` 초예민 상태였기 때문에 현장을 제대로 즐기며 신나게 일하지 못한 것 같아 사실 드라마 끝나고 많이 속상했다.
-일본에 있는 동안 국내 팬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마이크로블로그에 안부 인사를 남긴 것도 인상적이었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팬들의 응원과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힘이 된 한 해였다. 내가 약해지고 어리석은 생각을 할 때마다 나를 붙잡아 일으켜주는 건 정말 팬들의 진심어린 마음과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너무 감사하다.
-지난해 야구선수를 꿈꾸는 어린이에게 야구용품을 선물하고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의 음반에 참여하는 등 좋은 일들을 많이 했다. 2005년부터 난치병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데 기부를 하게 된 계기는? 기부에 대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원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자꾸 `넌 이런 사람이야`라며 주변에서 말해주면 자기도 모르게 `난 이런 사람인가 보다`라며 그렇게 살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난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할 기회가 자꾸 주어져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앞으로 더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난 아직도 기부와 나눔에 있어서 갈 길이 한참 멀다.
-향후 계획은? 국내 팬들은 언제쯤 작품에서 김태희를 만날 수 있나?
▲아직 다음 작품이 확정된 것 없다. `아이리스` 이후 쉬지 않고 연달아 작품들을 하느라 많이 지쳐 있다. 또 한편으로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드라마 촬영 중에는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읽을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어서 다 제쳐두고 있었다. 지금부터 다시 눈 부릅뜨고 좋은 작품을 찾아볼 거다. 드라마, 영화 관계자 모든 분들의 러브콜을 기다린다.
-지난해는 본인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그리고 새해 소망은?
▲지난해는 새로운 도전으로 설레고 치열했던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