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홀 로브샷 마법"..김세영, 미국서도 뒤집기 한판승
by김인오 기자
2015.02.10 06:00:00
| 9일 끝난 LPGA 투어 바하마 클래식에서 정상에 오른 김세영이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AFPB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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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태권 소녀’ 김세영(22·미래에셋)의 역전 우승 본능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무대에서도 통했다.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한 김세영은 9일(한국시간) 바하마의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골프장(파73)에서 끝난 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5승까지 포함, 여섯 차례의 우승을 모두 역전 우승으로 일궈내는 이색 기록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07년과 2009년 국가대표를 지내며 많은 우승을 이뤄냈던 김세영은 기대를 한몸에 받고 2011년 KLPGA 투어에 입성했다. 하지만 2년 동안은 빛을 보지 못했고 첫 우승은 3년 차이던 2013년 4월,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작성했다. 당시 김세영은 마지막 홀에서의 극적인 이글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종라운드만 되면 무섭게 돌변하는 김세영의 ‘역전 본능’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2013년 9월 열린 한화금융 클래식과 메이저대회 KLPGA 챔피언십에서도 역전극으로 정상에 오르며 승승장구한 그는 2013시즌 KLPGA 투어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MBN 여자오픈에서 역전 우승으로 2승을 추가했다.
MBN 여자오픈 우승 당시 김세영은 “나한테는 역전 우승이 잘 맞는 것 같다. 타이거 우즈 등 최고의 선수들을 보면 항상 역전을 한다. 필요한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나도 우즈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역전 우승’은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역전의 여왕’ 명성은 LPGA 투어에서도 이어졌다. 바하마 클래식 최종라운드를 공동 6위로 출발한 김세영은 선두권 선수들이 타수를 줄이며 주춤한 사이 5타를 줄이며 공동 선두 자리를 꿰찼고, 연장 첫 홀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버디를 솎아냈다. 지난주 개막전 코츠 챔피언십에서의 컷 탈락했던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의 대반전이었다.
역전 우승이나 연장전 승리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세영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김정일(53) 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며 기초 체력을 키웠다. 중학생이던 2007년 초청 선수로 출전한 KLPGA 투어 대회에서 “떨릴 줄 알았는데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로 대범했다.
바하마 클래식 최종라운드 16번홀(파4)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로브샷이 우승을 견인했다. 15번홀(파4) 버디로 선두 유선영과의 격차를 1타 차로 줄인 김세영은 16번홀에서 그린을 향해 두 번째 샷을 날렸지만 바람을 타고 훌쩍 지나가는 바람에 해저드 구역까지 공이 날아갔다. 타수를 잃을 절체절명의 위기. 남은 홀이 많지 않아 역전은커녕 연장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처했다.
공은 다행히 해초 위에 놓여 있었지만 클럽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엉켜 있어서 탈출도 힘들어 보였다. 홀까지 남은 거리는 약 10여 미터. 한참을 고민하던 김세영은 웨지를 꺼내 연습 스윙을 시작했다. 그런데 풀 스윙이었다. 공을 하늘 높이 띄워 그린에 바로 떨어지게 만드는 로브샷을 선택한 것이다. 공 아래를 너무 깊숙이 파고들면 그린에 미치지 못하고, 토핑이 나면 홀을 지나쳐 더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마음을 굳힌 듯 김세영은 홀을 향해 힘있게 샷을 했다. 공은 높이 솟아오르더니 홀 2.5m 지점에 안착했다. 캐디도 예상치 못했다는 듯 놀란 눈으로 김세영을 바라봤다. 이어진 파 퍼트. 프로 선수들이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거리지만 김세영은 차분하게 퍼터를 휘둘렀다. 공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홀 안으로 사라졌다. 이른바 ‘슈퍼 파 세이브’. 자신감을 얻은 김세영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어프로치 샷을 홀 1.5m에 붙여 버디를 잡아냈고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김세영은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경쟁자들이 버디 퍼트를 실패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버디를 낚았다. 우승컵도, 상금 수표도, 명품 시계 롤렉스도 김세영의 품에 모두 안겼다.
김세영은 “목표는 톱10이었는데, 우승까지 하게 돼 놀랍다. 10년 전부터 꿈꿔온 것이 드디어 이뤄졌다. 정말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장전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며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드러낸 김세영은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가 되고 싶어서 LPGA 투어에 왔다. 이번 우승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목표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