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10.04.29 08:03:25
오르기보다 하산이 더 위험… "살아돌아가는 게 최고 등반"
[조선일보 제공]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44·블랙야크)은 평소 "최고의 등반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산(下山)은 이미 목표를 이룬 뒤의 과정이지만, 고산 등반가들에겐 또 하나의 벽이다. 오 대장은 28일 오후 안나푸르나 캠프4(7200m)에서 출발해 베이스캠프(4200m)로 향했다.
산을 내려올 때 걸리는 시간은 올라갈 때의 1/3 정도라는 것이 산악계의 정설이다. 산을 오를 때는 고소 적응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하산 때는 산소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는 하산 때 더 많이 생긴다. 2000년 아시아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씨는 "등반 사고의 60~70%가 산을 내려갈 때 발생한다. 정상을 앞두고 없던 힘까지 쥐어짰던 '정상 약발'이 그리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려올 땐 무의식 상태에서 발이 끌려가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쉽다"고 말했다. 오 대장과 14좌 완등을 놓고 경쟁했던 고미영씨도 2009년 낭가파르밧에 오른 뒤 내려오다 실족해 숨을 거뒀다.
28일 오은선 대장에게 구조를 요청했던 스페인 원정대처럼 탈진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고지에선 지폐 한 장도 천근 같다"고 하는 등반가들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물을 최소한으로 가져가는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이를 모두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 정작 내려갈 때 탈수현상에 시달린다. 평지에 비해 3~4배나 강렬한 자외선도 등반가의 혼을 빼놓는다.
최소한의 물과 식량이 있는 캠프4에만 가도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내려갈수록 형편은 나아진다. 요리사가 있는 캠프1은 대원들 사이에선 '호텔'로 통한다. 후원사 블랙야크 관계자는 "오 대장이 지난 24일 정상 도전에 실패하고 나서 캠프1로 다시 내려왔을 때 베이스캠프에서 공수된 순대를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고 말했다.
산을 내려온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 등정에 대한 국제적 공인절차는 따로 없다. 대신 통상적으로 히말라야 고봉을 보유한 네팔과 파키스탄 관광성의 인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정상에서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 주변 산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다. 오은선의 경쟁자였던 에드루네 파사반(스페인)이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도 지난해 5월 오 대장이 칸첸중가에서 찍은 사진이 산 정상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점이다.
오 대장은 14좌 완등 인정과 관련해 다음 달 초 엘리자베스 홀리(86)와 인터뷰할 예정이다. 로이터통신 주재기자로 1960년부터 네팔에서 활동한 홀리는 50년간 히말라야를 등정한 등반대의 모든 기록을 정리한 '히말라야의 산 증인'이다. 권위자 홀리의 인터뷰 결과는 사실상 '세계 공식 인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