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테마록]3할 VS 2할8푼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by정철우 기자
2008.09.26 08:33:15

▲ 양준혁 (사진제공=삼성라이온즈)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시즌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즈음. 타자 A가 자신의 성적표를 손에 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또 3할을 못 쳤네...'

그의 타율은 2할8푼8리. 벌써 몇년째 비슷한 성적이다. 올해는 1년 동안 큰 부상없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봤지만 또 다시 3할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별 것 아닌 듯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3할 타율. A는 짧은 한숨을 내쉰다.

팀에서는 나름 주축 선수 대우를 받지만 크게 드러내놓고 잘난 척을 하기도 어렵다. 3할 타자와 그렇지 않은 타자를 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3할 타자와 A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A와 비슷한 2할8푼대 타자와 3할 타자는 생각만큼 큰 격차가 나는 것은 아니다. 25일 현재 3할1푼1리를 치고 있는 이종욱(두산)의 경우를 보자.

이종욱은 올시즌 136개의 안타를 쳤다. 이 중 10개만 빼도 타율은 크게 떨어진다. 이종욱이 만약 126개를 쳤다면 그의 타율은 2할8푼8리가 된다. 바로 타자 A의 타율이다.

이종욱이 현재까지 뛴 경기수는 115경기. A보다 12경기서 하나 정도 안타를 더 쳤을 뿐이다. 일주일에 6경기씩 치르는 점을 감안하면 2할8푼대 타자에 비해 2주에 안타 하나정도만 더 많았다는 뜻이 된다.

이 정도 차이로 좋은 타자와 그렇지 않은 타자를 가르는 것은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야구 통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세이버 메트리션들은 이같은 사실을 들어 타율을 매우 헛점이 많은 통계로 치부하기도 한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 있다. 양준혁(삼성)이나 장성호(KIA)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선수들이 두번째 타석까지 안타를 치지 못한 채 세번째 혹은 네번째 타석에 들어서면 방송 해설자들은 흔히 이런 멘트를 한다. "지금까지 안타가 없었다는 건 이제 하나 나올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3할 타자니까요."

팬들의 야구에 대한 눈 높이가 높아지며 이런 식의 해설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마치 3할을 숫자 놀이 정도로 여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해설자들의 말이 틀렸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정준 SK 전력분석팀 과장은 이에 대해 "맞는 말이라고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3할 타자들의 경우 안타 없는 세번째나 네번째 타석에서 안타가 나올 확률이 꽤 있다. 기록을 정리하다보면 그런 경우를 숱하게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3할 타자는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 두번째 타석 정도까지 안타가 없었다면 컨디션이 좋지 못하거나 상대 선발의 구위에 눌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 특유의 집중력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또 언제든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밀리지 않는다. 만약 같은 투수를 세번째나 네번째 상대하게 된다면 안타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

타자가 일년 내내 좋은 타격감을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3할 타자에겐 안 좋은 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는 집중력과 자신감이라는 무기가 있다. 3할은 어떤 경기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이다.

2,000안타 시대를 연 양준혁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타구를 치고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 것만 잘 지켜도 1년에 안타 몇개는 건질 수 있다. 그 차이가 3할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 김현수 (사진제공=두산베어스)

'3할 타자'를 '좋은 타자'와 같은 의미로 쓸 경우 2008시즌의 가장 좋은 '3할 타자'는 단연 두산 김현수다. 3할5푼5리의 빼어난 타율로 타격왕을 예약한 김현수는 빼어난 타격 감각으로 차세대 최고 타자 자리까지 일찌감치 찜해 놓았다.

그럼 김현수는 안타 없이 맞이한 세번째와 네번째 타석에서 어떤 성적을 남겼을까.

김현수는 118경기에 출장해 90경기서 안타를 쳤다. 1안타 경기는 모두 43번 있었다. 나머지 47번은 2개 이상의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43번의 1안타 경기 중 3번째 타석 이상에서 안타를 친 것은 모두 24번이다. 1안타 경기의 절반 이상(56%)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안타를 치지 못한 경기수와도 비슷한 수치다. 안타를 치지 못한 경기는 28번이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제 안타가 나올때가 됐다"는 해설자들의 말은 절반 정도 맞는 얘기라는 뜻이 된다.
 
한때 전설로 불렸던 한 고참 선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렸다. "솔직히 요즘 경기에 나서면 어떻게든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려 노력한다. 첫 타석에 부진하면 자신감과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창때는 안 그랬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타석이 거듭될수록 감이 잡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늘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런 자신감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