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8.05.19 09:20:04
자신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회견장 참석
"돈 때문에 영화 찍었냐고?
불법 DVD로 길거리 나온들 이미 망가진 몸… 누가 사겠나"
[조선일보 제공]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핵(核)주먹'에서 스스로의 표현대로 "지구 최악의 수컷"(the baddest man on the planet)으로 곤두박질했던 사내, 마이크 타이슨(Tyson·42). 17일(현지시각) 칸 국제영화제 기자회견장에 그가 나타났다.
한쪽 이마에 마오리족 문신을 새긴 그는 뜻밖에 얼어 있었다.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해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이렇게 거대한 행사인지도 잘 몰랐고요. 솔직히 조금 무섭습니다." 얼굴과 몸집은 전성기의 두 배로 불어난 듯했고, 특유의 웅얼거리는 혀 짧은 소리는 그대로였다.
그가 칸을 찾은 이유는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은 다큐멘터리 '타이슨' 때문. 20년 지기(知己)인 영화감독 제임스 토백(Toback)이 타이슨의 인생을 스크린에 옮겼다. "맨정신이 된 지 15개월 됐다"는 그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약물중독 치료센터 신세를 지고 있었다.
지금도 무려 400만달러(약 40억원) 가까운 빚에 허덕이는 처지다. 한 기자가 "솔직히 돈 때문에 만든 영화 아니냐"는 가혹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주먹을 날리는 대신'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미지가 이런데) 불법복제 DVD로 길거리에 나온들 누가 사주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영화로 타이슨이 돈을 벌지는 미지수다. 다만 타이슨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는 관객의 선입관은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자랑스러웠던 시절에 대한 미화보다는 부끄러웠던 시절에 대한 반성이 대부분이고, 그것도 본인의 입을 통해서다. "어렸을 때 나는 혀 짧은 소리한다고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았습니다"로 시작하는 다큐 '타이슨'은 강간·폭력·수감·약물·파산으로 얼룩져버린 짐승 같은 사내의 내면을 그의 눈물과 함께 보여준다.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나 20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가 끝없이 추락하는 타이슨의 인생 궤적은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과도 흡사하다. 1997년 경기 도중 상대방인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던 그 유명한 장면을 포함, 선수 시절 하이라이트도 포함됐다. 영화는 "(내 인생은) 어제는 역사였지만, 내일은 미스터리"(Yesterday was history, but tomorrow is mystery)라는 그의 고백으로 끝이 난다.
기자회견을 끝내며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혹독한 비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