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과 딥토크 3] 국내 지도자에 대한 선입관 버렸으면

by김삼우 기자
2008.02.09 10:52:57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허정무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던 국내 지도자였다. 허 감독은 당시 대표팀을 맡았던 전 기간이 아쉬웠다고 했고, 이제는 “이뤄질 것이다. 이루고 싶다”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겠다, 이뤄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우선 팬들도 국내 지도자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을 버려주기를 당부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올린 뒤 외국인 지도자가 계속 한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뭐가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자. 또 만약 앞으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역시 국내 지도자는 안돼’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외국 지도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외국 지도자니까 안돼’ 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이젠 국내 지도자에 대한 선입견을 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국내외를 떠나 국가대표팀을 맡은 똑같은 지도자로 봐 줬으면 한다. 외국 감독, 국내 감독으로 나눠서 보는 시각은 없어졌으면 한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때 승부사로서의 숙명을 이야기했다. 그 숙명을 피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을 때 왜 이런 시기에 들어가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승부를 걸어야 할 시기가 있고, 정말 해야 할 승부라면 피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승부라는 마음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갈 것이다. 정말 모든 게 잘되고 잘 따라 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축구 인생 최대의 승부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을 건 승부다.”

그는 선수들에게는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이동국 이운재 등 징계로 대표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은 먼저 본인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자세와 모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징계를 받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 축구협회에 조기 징계 해제를 요구하는 등의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다. 그들은 물론 한국 축구의 자산이고 소속팀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인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능력있는 모든 선수들이 다 필요하고 아쉽다. 황선홍의 존재는 아쉽지 않겠느냐. 또 옛날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와 같은 출중한 재능은 그렇지 않겠는가. 세월은 흐르고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 선수는 무엇보다 현재 그라운드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부상당해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면 선수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제 아무리 펠레라도 다쳐서 벤치에 앉아 있으면 선수로서 가치는 없다.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언제라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뿐이다.“





박주영에 대해 물었다. 허 감독은 축구 선수에게는 절대 순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니라면서 어려움이 왔을 때 이를 본인이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축구인생의 성패는 달라진다고 했다.

“주영이는 재능있는 선수다. 올림픽 대표팀이 유럽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잠깐 만났다. 축구 천재로 갑자기 부각되다 가라앉으면서 심적으로 굉장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팬이나 주위의 큰 기대에 압박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신경 쓰지 말아라. 너와의 싸움이다. 자신감을 가져라. 솔직히 현역 시절 나를 너와 비교했을 때 기술적으로 너보다 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 골 넣는 감각은 네가 훨씬 낫다.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져라. ’누구든 덤벼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뭔가 부담감을 가지고 경기장에 나서는 것과 ‘그래 누구든 나와 봐’라는 자세로 나가는 것은 차이가 엄청나다.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위의 시선 등을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대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하다. 옆에서 모든 것을 챙겨 줄 수 없다. 주영이는 누가 뭐라 하던 감각과 지능, 그리고 골을 결정하는 능력 등은 타고난 선수다.“

허 감독은 속도를 강조했다. 빠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허정무호‘의 색깔은 스피드다.

‘현대 축구는 빨라졌다. 패스 속도, 공수 연결과 전환 등 빠르지 않으면 안된다. 활동량도 많아졌다. 또 빠르고 정교해야 한다. 이를 이루기가 쉽지는 않지만 시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허 감독은 축구 인생에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은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다면서도 포항 감독 시절이던 1995년 챔피언 결정전을 떠올렸고, 첫 번째 대표팀 감독 재임 때를 기억했다.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성남 일화와 맞붙었던 챔피언 결정전 당시 포항은 1차전은 1-1로 비긴 뒤 2차전에서 2-0으로 앞서다 결국 3-3으로 비겨 예정에도 없던 3차전까지 갔다가 결국 일화에 정상을 내줬다.)
“처음 대표팀을 2년 동안 맡았을 때 너무 못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것 밖에 못했을까. 더 잘 할 수 없었을까 등등 아쉬움이 너무 많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안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용수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허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그의 실패의 경험에서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실패를 많이 할수록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실패가 보약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스스로 실패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했다. 팬들도 ‘허정무호’가 당장 보이는 성적에 연연하기 보다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는 전체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허 감독은 “선수, 지도자 등 축구인으로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면서 “어떤 형태로던 한국 축구에 보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일을 반드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정욱 기자)


▲생년월일=1955년 1월 13일
▲출생지=전남 진도
▲학력=영등포공고-연세대-수원대 대학원
▲선수 경력=한국전력-해병대-아인트호벤-현대
▲대표 경력=청소년 대표(1973년)-국가대표(1974~86년, 통산 87경기 출전 30골)
▲지도자 경력=월드컵 대표 트레이너(1989~90)-국가대표 코치(1991, 93, 94)-포항 코치(1991~92) 포항 감독(1993~95)-전남 감독(1996~98)-국가대표 및 올림픽 대표 감독(1998~2000)-국가대표 수석 코치(2004)-전남 감독(2005~2007)-국가대표 감독(2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