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설맞이⑥]션 리차드, "저도 반쪽은 한국인이에요"

by장서윤 기자
2010.02.12 08:00:00

▲ 션 리차드

[이데일리 SPN 장서윤 기자] "우리 엄마가 한국인이잖아요. 어릴 때 한국에서 더 많이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검은 눈동자에 호리호리한 체격, 섬세하게 생긴 눈코입까지. SBS 월화드라마 '제중원'(극본 이기원 연출 홍창욱)에 출연중인 외국인 배우 션 리차드(26)는 얼핏 보면 동양인이라고 느낄 만한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일까. 첫 한국 작품에서 주연 자리를 꿰차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제 '제중원'에서 맡은 외국인 선교사 알렌 역을 제법 능숙하게 연기해 낸다. 아직 어색한 그의 한국어 발음이 한국말이 서투른 알렌 역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몰입'에도 부담이 없다.

"함께 출연중인 (한)혜진 누나가 저보고 '짱'이래요. 한국에 온 지 2년 반만에, 게다가 첫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잖아요"(웃음)

지난해 10월 오디션을 통해 '제중원'에 캐스팅된 그는 '모험'이라고 평가했던 제작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품에 안착했다.

▲ 션 리차드
여전히 "'진료'같은 ㄴ, ㄹ이 들어가는 한국어 발음은 어려워 죽겠다"는 그이지만 박용우, 한혜진, 연정훈 등 어느새 함께 출연중인 배우들에게도 '누나' '형'이란 호칭을 쓸 만큼 가까워졌다.

"(박)용우 형이랑은 5부에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확 가까워졌어요. 알렌이 백정 출신인 황정(박용우)를 조수로 받아들이는 장면이었는데 처음으로 긴 한국어 대사를 하는 신이라 저도 떨리고 용우 형도 긴장했거든요. 무사히 신을 마치니까 비로소 두 사람이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뿌듯했어요"

촬영장의 '통역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 연정훈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다. "가끔 PD님의 연기 지시를 제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영어가 능숙한 (연)정훈이 형이 차근차근 설명해줘서 제대로 할 수 있었어요. 또…혜진 누나는 남자들만 많은 촬영장에 거의 유일한 여자라 촬영장의 '꽃'이에요"

스스로 "'제중원'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평하는 그이지만 '인생을 바꾸기 위해'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온 것은 순전히 그의 용기였다.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과 연기를 전공한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를 두었다. 졸업 후 연기자의 길을 모색하다 망설임없이 한국행을 택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나도 반쪽은 한국인이니까, 언젠가는 가서 꼭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그때 미국 경제가 침체기를 맞아 할리우드에 신인 배우들의 일자리가 거의 사라진 점도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구요. 사실 떠나올 때 아버지는 '미국에서 해도 되지 않겠냐'며 말렸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했거든요"

▲ 션 리차드

대학을 졸업한 지 1년 만인 2007년 8월, 그렇게 태평양을 건너 온 그의 지난 2년 반의 한국생활은 당연히 녹록지 않았다.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친구들도 사귀고, 오디션도 종종 보러 다녔지만 외로움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국말을 배우고, 미국과 판이하게 다른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었어요. 졸업 후 취직해 돈을 버는 미국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불안감이 불쑥 밀려오기도 했죠. '과연 내게도 기회가 올까'라는 두려움도 들었구요"

그에게 '만일 오디션에 계속 떨어지고, '제중원'에도 캐스팅되지 못했다면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 같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곰곰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다.

"'외국인' 배우가 아닌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그의 자신감은 대학 때부터 십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얻은 무대 경험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그는 '제중원' 오디션 당시에도 연극 '햄릿'의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영어 연기로 소화해 내 단번에 합격하기도 했다.

"오셀로, 맥베드같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무척 좋아했고 무대에서도 여러 번 했어요. 연기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자신감있고 자유로워진다는 걸 느낀 후로는 연기가 무엇보다 좋아요"(웃음)

게다가 최근에 팬까페까지 생겨 드디어 팬들도 보유하게 됐다고. "아직 몇 명 안 되지만요. 예전에 제가 이용하던 마이 스페이스(My space)에 올린 사진까지 찾아내는 걸 보고 '대단하다' 싶었어요"(웃음)

한국에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그가 바람대로 연기자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겠다는 예감이 드는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