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의 친구 야구] ‘병현 불펜 전용?’ 과연 그렇게 될까
by한들 기자
2008.02.22 09:27:24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한 김병현이 불펜으로 기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피츠버그 닐 헌팅턴 단장이 영입 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오직 구원 투수 김병현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오로지 불펜 투수로서만 그를 기용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헌팅턴 단장이 ‘불펜 전용’을 거듭 강조한 것을 보면 협상 과정에서 선발을 원하는 김병현 측과 피츠버그의 적잖은 진통이 있었음이 짐작됩니다. 또 팀의 취약한 불펜 보강에 대한 단장의 열망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쥐고 있는 단장의 언급이 있었다고 해서 김병현의 불펜 전용을 못 박고, 심지어 선발 투수의 꿈이 물거품으로 끝나버렸다고까지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해석입니다.
먼저 피츠버그 마운드의 현황을 살펴봤을 때 그렇습니다. 피츠버그 선발진은 지난해 4명의 풀타임 멤버와 1명의 땜질 선발로 운영됐습니다. 올해도 이들을 중심으로 선발진이 꾸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5명 중 한명은 연봉이 많은 베테랑이고, 또 한명은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 선발이 됐습니다. 나머지 3명은 모두 풀타임 선발 경력이 아직 2년에 불과한 선수들입니다.
헌팅턴 단장이 김병현을 영입하면서 ‘계획’이란 말을 썼지만 이런 선발 투수들의 구성이 경력으로 보나, 기량으로 보나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의문입니다.
해마다 시범경기 두껑이 열렸을 때 단장의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이는 피츠버그 같이 심하게 말해 ‘그 때 그 때 달라요’ 같은 팀은 말할 것도 없고 리빌딩의 야심찬 청사진을 갖고 있는 팀과 심지어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월드시리즈 우승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김병현의 ‘불펜 전용’론이 그렇게 의미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피츠버그가 이번에 선발 자리를 보장한다고 했을지라도 김병현은 어차피 시범경기를 통해서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선수입니다. 지난해 데뷔 첫 10승(2구원승)을 올렸지만 평균 자책점이 6점을 넘는 등 아직 풀타임 선발 투수라기보다는 여전히 테스트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설혹 선발 계약을 했을지라도 명목뿐인 5선발이었을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5 선발은 완벽한 ‘붙박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팜시스템이 잘 갖춰진 팀들은 이 자리를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가장 뛰어난 유망주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고, 선발 투수가 차고 넘쳐 흐르는 팀이라야 이 자리에 베테랑을 기용합니다.
결국 김병현은 불펜 투수로 계약을 했든, 선발 투수로 계약을 했든 표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내용의 본질은 똑같은 것입니다. 다만 새 둥지의 단장이 ‘불펜’이란 말을 꺼냈다는 게 본인의 희망과 달라 아쉬운 ‘기분상의 문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또한 엄연한 김병현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김병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발이냐, 불펜이냐가 아닙니다. 바로 1주일도 채 안 남은 시범경기입니다.
까놓고 말해 명수만 확정됐지 최소 두 자리 이상은 무주공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피츠버그 선발진은 시범경기에 들어가자마자 선발진을 리셋(reset)해야 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필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김병현은 구단의 지시대로 나올 수밖에 없는 시범경기 첫 2~3경기 등판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렇게 되면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자원을 보유한 피츠버그 단장의 생각도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불펜이란 단장의 말에 김병현이 비관할 필요도 없고, 그것이 대단한 사실이라도 되는 양 장문의 분석을 곁들이면서 법석을 떨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이제 겨우 주사위가 던져졌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