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영훈, "뮤지션에겐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

by최은영 기자
2007.05.10 10:19:47

히트곡 리메이크 앨범‘옛사랑에 이어 뮤지컬 '광화문 연가'로 제2의 인생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좋은 음악은 세대를 막론하고 오랜 시간 사랑받는다.' 

최근 이 같은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사람이 있다. 바로 작곡가 이영훈(47)이다.
 
음악과 연을 맺은지 22년만에 그는 난생처럼 가수가 아닌,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앨범 '옛사랑'을 조심스레 품에서 꺼내 놓았다.

그런데 먼저,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미안한 얘기' 먼저 잠시 꺼낼까 한다. 처음 재킷만 보고는 요즘 가요계에 범람하는 짜집기식 편집음반의 하나로만 알았다.
 
그런데 음반을 들어보니 말 그대로 '작품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의 숨결과 음악에의 열정이 그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수 아닌 작곡가의 노래를 묶은 작품집이 음반으로 출시되는 건 드문 일이다. 어쩌면 오랜 기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음악가로 생명을 이어온 작곡가 이영훈이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는지 모를 일이다.

이영훈은 "어느 순간 인생을 돌이켜보니 작곡을 시작한지도 어언 20여년이나 흘렀더라"며 "이쯤해서 내 음악을 다시 한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다"고 '옛사랑'을 기획, 발매하게된 배경을 밝혔다.



'옛사랑' 음반은 2006년 9월 1집이 나왔고, 최근 7개월 여만에 선보여진 2집이 나왔다. 

'옛사랑2'는 1집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타일과 개성을 지닌 가수들이 참여해 그를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윤도현, 리쌍, 성시경, 박혜경, 임재범, 윤종신 등 모두 14팀이 참여, 이영훈이 작곡하고 이문세가 부른 히트곡 13곡을 요즘 감각에 맞춰 새로운 느낌으로 탄생시켰다.

'옛사랑2'의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가수 윤건이 불러 요즘 신세대들 사이에서도 모르지 않는 곡이 됐다. 이영훈이 더없이 존경하는 선배라는 정훈희는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제 짝을 찾은 듯 멋들어지게 소화해내 그를 감탄시켰다. 2집에서 '광화문연가'를 부른 성시경은 7번씩이나 녹음실을 찾는 열정도 보였다. 
 


이영훈의 입에서는 이번 앨범에 참여한 이승철, 윤도현, 박완규, 성시경, 버블시스터즈 등 실력파 후배 가수들에 대한 상찬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옛사랑 2'는 10억여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그 가운데 3억여원은 이영훈이 자비를 투자했다.
 
이영훈은 "완성도 높은 음반을 선보이려다 보니 국내 최고의 가수들을 섭외하는 것부터 녹음, 편곡까지 자꾸만 욕심을 부리게 되더라"라며 머쓱해했다.

"적자가 예상되지만 돈을 벌 욕심에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제 노래의 가치를 인정하고 억대의 큰 돈을 선뜻 내어준 서울음반 측에 좀 죄송해서 그게 문제죠.“



사실 가요계가 불황에 허덕이는 요즘 10억이라는 자금을 앨범 한 장에 쏟아 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영훈은 "적어도 예술가라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상업화되고 오락화 되어가는 현 가요계를 따끔히 지적하기도 했다.

"노랫말 하나만 살펴봐도 그래요. 메시지 전달조차 제대로 안 되는 노래가 수두룩하잖아요. 습작 정도의 수준에서 만족하고 음반을 내는 거죠. 그렇게 대중을 우롱하고 속이려들면 안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예술가라면 말입니다. 가수도, 제작자도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너무 쉬운 쪽만을 택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표절 또한 문제다 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구요."

이영훈은 현 가요계를 향한 질책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의 냉철한 충고에는 우리 가요계를 향한 무한 애정도 담겨 있다.

이영훈은 요즘 젊은 가수들에게 생각해볼 과제를 하나 던지기도 했다. '얼마를 버는 가수'와 '얼마만큼의 사랑을 받는 가수' 중 어떠한 평가가 차후에 더 자랑스럽겠는가를 말이다.
▲ 최근 작품집 '옛사랑'을 선보인 작곡가 이영훈은 현가요계를 위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영훈은 '이문세의 작곡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문세의 3집부터 13집까지 함께 했으니 한 명의 가수에게 자신의 모든 음악적 열성을 쏟아 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문세와의 작업은 2001년 13집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12집과 13집이 연이어 대중에게 외면을 당한 이후 내린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이영훈은 '한계에 봉착했다'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대중은 늘 새로운 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린 너무 오래, 또 너무 많이 붙어 다녔어요. 인간적인 친분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음악적 파트너로서는 생명을 다했다고 봐야죠."

사실 작곡가 이영훈와 가수 이문세는 떼어놓고 생각하려야 그럴 수가 없는 존재다. 두 사람은 1984년 신촌블루스 녹음실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이문세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에게 곡을 부탁했고, 엄인호는 그런 그에게 당시 동석해 있던 이영훈을 소개시키며 다리를 놓아준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두 사람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별이야기' '광화문 연가'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한 사람은 가수로, 또 한 사람은 작곡가로서의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가요계 첫 100만장 돌파 기록도 두 사람의 손에서 탄생됐다.

작곡가 이영훈은 다작을 않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자신이 쓴 곡을 쉽게 팔지도 않는다. 이유를 묻자 그는 "팔만한 곡도 없을 뿐더러 대충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만큼 그렇게 철면피도 못된다"며 겸손해 했다.

요즘도 한 달에 한 곡 정도는 꾸준히 곡을 쓴다는 이영훈은 현재 공개하지 않은 곡이 50~60곡 정도가 된다며 집안 어딘가에 돈다발이라도 쌓아 놓고 사는 사람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오래 이문세씨 하고 일을 해서인지 이번 작업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1년에 많으면 15곡 정도 작업을 해서 12곡을 이문세씨에게 주면 곡이 없어 다른 가수들과의 작업은 꿈도 꿀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적합한 목소리의 주인공만 나타나면 굳이 돈을 받지 않더라도 내 곡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고 암튼 기분이 묘해요.”

이영훈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작곡가 인생에 새로운 변주곡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몸과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바로 자신의 옛노래를 테마로 하는 음악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제작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이영훈은 최근 오랜 친구인 방송인 김승현과 의기투합, H1엔터테인먼트라는 공연기획사를 설립했다. 최고만을 고집하는 그는 유명 뮤지컬 감독에 실력파 작가도 영입해둔 상태다.

이번 작업에 거는 이영훈의 기대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이영훈은 뮤지컬의 제목이 '광화문연가'인만큼 '광화문에서, 그것도 제일 큰 공연장(세종문화회관)의 무대에 올렸음 하는 바람이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곤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작곡가 이영훈이 제작하는 창작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내년 10월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