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달러 들인 블록버스터가 시사회를 열지 않은 까닭은?

by조선일보 기자
2008.03.14 09:38:24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10,000 BC'
이야기와 볼거리 사이 불균형 심각
입소문 전에 첫 주말 흥행 노리나



[조선일보 제공] 예매 점유율 47%로 압도적 1위(맥스무비 13일 오후 4시 현재). 상영관 300 개 이상으로 이번 주 개봉 영화 중 최다 스크린 확보….

3월 둘째 주 조선일보 영화팀의 선택은 선사(先史)시대 블록버스터 '10,000 BC'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선택은 긍정적 의미의 추천이 아니다. 예매율 1위 혹은 신기루 같은 특수효과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까닭에서다.

어제(13일) 개봉할 때까지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이 영화는 국내에서 전혀 시사회를 열지 않았다. 비평에 자신 없거나, 비평 듣기를 싫어하는 할리우드 대중영화가 부정적 소문이 나기 전에 첫 주말 관객이라도 붙잡고 싶을 때 애용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Emmerich)가 지금까지 평단에서 들었던 비판은 "근육만 있고 뇌가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 '유니버설 솔져'(1992) '스타게이트'(1994) '인디펜던스 데이'(1996) '고질라'(1998) '투모로우'(2004) 등이 그의 작품 리스트다. 괴수영화 '고질라'의 핵심 홍보문구였던 "중요한 건 크기다"(Size does matter)는 스펙터클과 사이즈를 지상명령으로 섬겼던 감독의 영화철학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에게는 "뇌 없는…" 류의 비판이 부당할 것이다. 영화는 각각의 취향일 따름이며, 대중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이런 연출 방식은 하나의 전략이자 선택이다. 실제로 그의 전작들은 흥행 면에서는 우수한 성적표를 받은 바 있다. 관객들에게 나름의 쾌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00 BC'가 유독 아쉬운 이유는 뇌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자랑거리였던 근육이 별 볼품이 없기 때문이며, 이야기와 스펙터클 사이의 불균형은 여전히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과학까지 가르치려던 영화의 욕망은 '과욕'으로 끝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 '10,000 BC'는 자신의 부족과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려는 청년의 영웅적 모험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의로 보면 '스크린으로 보는 동물의 왕국' 같고, 심하게 말하면 '지루한 역사수업이나 과학수업 시간' 같다. 거대한 매머드(맘모스)나 식인(食人) 조류와의 대결은 나름대로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지만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력을 고려하면 새롭지 않고, 인류가 왜 수렵에서 농경으로 옮겨갔는가를 설명할 때는 마치 케이블 과학채널을 보는 듯한 혼란을 일으킨다. 피라미드가 왜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지를 알게 되는 건 덤이다. 문제는 그게 이 영화를 보러 간 관객들이 기대한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실과 전설은 세월과 함께 빛을 발한다"는 류의 잠언(箴言)을 내레이션으로 반복하는 이 영화는 스스로를 성찰과 깨달음의 영화로 포장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계속될수록 빛을 발하는 건 도대체 이 영화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차라리 액션과 재난영화의 순수한 쾌감을 즐길 수 있었던 '유니버설 솔져'나 '투모로우'가 그립다.


기원전 10000년. 기마(騎馬) 전사들이 한 수렵(狩獵) 부족을 초토화시키고 아름다운 소녀 에볼렛(카밀라 벨)을 납치해간다. 그녀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 들레이(스티븐 스트레이트)가 구출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이치. 문제는 그다음이다. 세상 끝으로의 거친 여정 중에 들레이는 피라미드를 건설 중인 막강한 제국을 발견한다. 기마 전사건, 수렵 부족이건, 그들 모두를 노예로 삼아 대역사(大役事)를 이루려는 사악한 악의 무리다. 이제 건곤일척의 대혈투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