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장혁 "군에서 맞은 서른, 새 연기 눈뜨게 해"

by김재범 기자
2007.05.13 11:43:01

▲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기서역을 맡은 장혁(사진=MBC)

[이데일리 SPN 김재범기자]


-‘고맙습니다’에서 기서를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의사라는 캐릭터가 주는 부담감이죠. 정말 이 역할 때문에 의학공부 많이 했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재활 부문 레지던트 4년차인 친구를 끌고 와서 공부했죠.

-의사역할이 힘들었다는 것은 복잡한 전문용어 때문인지
▲의학용어를 외우는 것은 그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죠. 제가 그냥 외우면 되니까... 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그 상황의 이유와 개연성을 알아야 리얼리티가 생기잖아요. 왜 이 증상에서 이런 진단이 나왔고, 그에 대해 그 치료과정이 필요한 이유가 무언지, 논리적인 설명과 과정을 알려달라고 매번 들들 볶았죠.

-그런 것은 그 때 그 때 대본이 나오면 전화로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레지던트인 친구에게 제가 더 절실하게 매달린 것은 극중 상황에서 의사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었어요. 뭐, ‘의사니까 냉정해야 한다’는 이론적인 정서가 아닌, 기서가 접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의사로서, 또 인간으로 느끼는 갈등과 생각에 대해 많이 토론했죠. 그저 흉내만 내지 않고 연기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시도 때도 없이 붙잡고 늘어졌죠. 저 무척 집요하거든요.
 
▲ '고맙습니다'의 조미령 장혁 류승수(왼쪽부터)(사진=MBC)

-극중에서 진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친구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
▲다른 건 감독님이나 작가와 의논할 수 있는데 시술 장면은 저 혼자 풀어야 하잖아요. 큰 수술 장면이나 진료 신을 찍는다 싶으면 친구에게 상황 설명하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 자문을 받았습니다. 알아야 제대로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대본 외우는 것 보다 친구와 의논하는 시간이 더 걸렸죠. ‘손은 이렇게 하고, 메스는 이렇게 잡고, 클램프는 이렇게 처리해야 하고...’ 덕분에 이제 상처 봉합하는 것은 실제로 잘 할 수 있어요. 인터뷰 때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순천향 병원 김태훈씨, 친구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이름을 밝히고 고맙다는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장혁은 “제 성격의 장점이자 단점인 집요함때문에 친구가 정말 고생했어요”라고 웃은 뒤, 친구 이름을 인터뷰 정리할 때 꼭 밝혀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그를 취재하면서 ‘집요함’(?)을 익히 경험했기 때문에 인터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전남 증도에 머물며 촬영하는 건 힘들지 않았는지
▲섬에서 드라마를 찍으면서 연기자란 직업을 택한 것이 즐겁고 좋았죠. 뭐랄까, ‘이게 바로 내 삶이구나’라는 편안함과 나른함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촬영하고 끝난 뒤 숙소에서 샤워하고 다음 촬영 스케줄과 대본 보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그 기분이 너무 행복했어요. 아버지가 건설업으로 집을 자주 비워 어릴 때는 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회사원이나 선생님이 좋았는데 나 역시 일로 현장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졌네요(웃음).
 
▲ '고맙습니다'의 인기 이끈 또 다른 주역, 서신애(왼쪽)과 공효진(사진=MBC)

- 그래도 환경이 바뀌고, 거기서 계속 머무른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텐데
▲섬에 내려가서 숙소 잡아놓고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현지 주민화됐죠. 마치 해 뜨면 일하러 나갔다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듯이 규칙적이었습니다.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조바심 날 것도 없고 짜증날 일도 없어요. 서울에 있으면서 매일 스케줄에 쫓겨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느긋하죠. 정말 드라마 촬영에서는 드물게 이 작품에서는 세 끼를 제 때 꼬박꼬박 먹으며 차분하게 연기했어요.

-드라마 연출자인 이재동 감독은 기서에 대해 어떤 주문을 했는가
▲특별히 구체적으로 미리 주문한 것은 없었어요. 그냥 촬영 전에 리허설하고 느낌에 대해 이야기한 뒤 슛에 들어갔어요. 감독님과 서로 교감한 것은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느낌이었죠.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현실 때문에 그러진 못하고, 마음만 가 있는 그런 느낌. 하지만 대부분 촬영현장보다 그 전의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상대인물인 영신역의 공효진과는 호흡이 잘 맞았는지
▲제작사로부터 시놉시스를 받은 여러 여배우들이 미혼모라는 캐릭터에 부담을 느껴 고사를 했어요. 이제야 말하지만 긴 공백 끝에 군에서 제대한 장혁이 극중 상대역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사실 현실적으론 그런 선택을 하는 게 맞으니까...(웃음). 하지만 (공)효진은 캐릭터에 대해 매력을 느꼈어요. 또 극본을 쓴 이경희 작가와 ‘상두야 학교가자’ 등에서 호습을 맞춘 경험도 있어 유리했죠. 함께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 번 ‘이 사람이 이 역할을 하게 돼서 이런 느낌을 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성인 연기자 못지않게 봄이역을 맡은 서신애의 활약과 인기가 대단했다
▲서신애는 정말 대단한 아이에요. 아니, 뛰어난 연기자입니다. 원래 아역들은 감성이 굉장히 좋거든요. 우리는 현실을 알면서 연기에 필요한 상상력을 잃어가는데, 아이들은 상상력이 좋아 금방 표현하고 느끼죠. 대신 촬영에 대한 논리적 이해가 떨어져 리액션 연기 같은 것이 잘 안되요. 그런데 신애는 그 리액션도 돼요. 혼자 카메라 앞에 선 신애에게 ‘혁이 오빠나 효진 언니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해’라고 하면 금방 울먹거리거나 화를 내며 빠져든다니까요. 
 


-드라마에서 기서의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는 뭐라고 했는가
▲성숙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연기의 발전성에 대한 이야기여서 기분 좋았어요.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거든요. 20대 초반에 했던 연기를 지금 하라고 하면 그 때의 느낌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요. 이제 30대가 돼서(장혁은 1976년생이다) 스무살과는 다른 시선과 느낌으로 연기를 하게 된 것이 고마울 뿐이죠 
 
▲ '고맙습니다'의 장혁과 서신애(사진=MBC)

- 그럼 군대를 가게 된 과정과 그곳에서의 경험이 변화를 이끌어 냈는지
▲결국 제가 겪은 경험들이 연기 속의 느낌에 작용을 하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20대를 사회에서 정리하지만 저는 군대에서 서른이란 나이를 맞았어요. 과거에 대한 부분들, 아픔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고 갈무리했죠. 전우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많은 걸 느꼈고...,무엇보다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병영생활이 정해진 일과표대로 진행되는데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 하나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그때 알았죠. 

- 드라마가 끝났는데 앞으로 무얼 할 생각인지
▲아직 다음 작품을 정하지 않았어요. 여러 시나리오나 대본을 받아봤지만 결정을 내리진 못했죠. 다음 작품에 들어갈 때까지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영어공부도 하고 절권도도 다시 배우고...
 
-절권도라면 이소룡이 했던 무술 아닌가. 언제부터 배웠는가.
▲군대 가기 전부터 배웠으니 아마 한 6년 정도 됐나. 한국에 도장이 하나 밖에 없어 거기서 배우고 있습니다. 절권도는 단이 없고 일정 수준이 되면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교련 자격을 주는데, 물론 저도 교련입니다.

-왜 절권도를 배우게 됐는지
▲전부터 한국 배우가 세계 무대에서 다른 아시아 배우들과 경쟁하려면 영어와 무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저 자신의 수양을 위해 해요. 마치 차 한 잔을 마시는 듯한 편안함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그 느낌을 공유하는 것도 좋고, 연기와 함께 절권도는 아마 평생을 함께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