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욱 “‘대전의 자랑’이 성심당과 저라고요?…꿈 다 이뤘습니다”[인터뷰]

by주미희 기자
2024.08.08 00:00:00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2관왕 오상욱 인터뷰
한국 선수단 첫 金…개인 그랜드슬램도 달성
“단체전 4연패·개인전 2연패 도전하겠다” 포부
발목 부상 후유증 시달려…무던한 멘탈로 이겨내
“인기 실감 못해…대전 성심당과 쌍벽? 말도 안돼요”

오상욱(사진=오메가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이렇게 바쁜 것도 잠시죠, 뭐.”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에서 가장 바쁜 선수 중 한 명은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오상욱(28·대전광역시청)이다.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그는 바로 다음날부터 광고 촬영 등의 일정을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광고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잠깐 짬이 났다는 오상욱을 전화로 만났다. ‘찾는 곳이 많아 쉴 시간도 없었겠다’는 말에 “이렇게 바쁜 것도 잠시죠”라고 답한 그에게서 큰 인기에도 들뜨지 않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운 멘탈을 엿볼 수 있었다.

오상욱은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이자 한국 남자 사브르의 첫 금메달을 기록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 석권)까지 달성했다. 이어진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도 ‘에이스’로 올림픽 단체전 3회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아시아 최초의 2관왕과 단체전 3연패를 이어갔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영광스럽다”면서 “앞으로 단체전 4연패, 개인전 2연패에 도전하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상욱은 3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땄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특히 팀 막내로 출전했던 도쿄 대회 때와 달리 이번에는 ‘둘째 형’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오상욱은 “어깨가 조금 무거웠는데 동생들(도경동, 박상원)이 단체전에서 저보다 더 잘 뛰어줘서 마음이 놓였다”고 회상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대표팀 히든카드 도경동의 깜짝 활약으로 단체전 3연패 위업을 수립했다. 오상욱은 “사실 (동생들의 활약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동생들이 실력은 좋은데 멘탈에 기복이 있는 편이다. 특히 올림픽 같은 큰 무대가 처음이어서 걱정했는데, 큰물에서 훨씬 잘 놀았다”며 대견해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2관왕을 달성하기까지 오상욱이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오상욱은 2022년 12월 김정환과 연습 경기 도중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았다. 스스로 ‘트라우마’로 칭할 정도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트라우마는 낙천적인 오상욱도 부정적인 상상에 빠지게 했다. 발을 세게 딛거나 다리 찢는 동작을 할 때 ‘발목이 또 꺾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자꾸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사이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파리올림픽 개막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슬럼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그랑프리 대회 8강에서 당시 세계랭킹 78위에게 졌고 직후 열린 월드컵에서는 아예 개인전 16강에서 탈락했다.



192cm의 장신에 긴 팔다리, 스피드와 순발력까지 좋은 세계 최고의 선수인 그에게 더이상 실력, 기술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도 발목을 다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예를 들면 울퉁불퉁한 바닥에 발을 계속 딛는 훈련을 하며 스스로에게 ‘발목이 괜찮다’는 인식을 심었다. 덕분에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벗어나 동작에 더 자신이 생겼고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자 오상욱 본연의 모습이 나왔다. 아시아선수권대회 개인전과 단체전 우승으로 파리올림픽을 예열했다.

오상욱은 자신의 올림픽 2관왕을 만든 건 ‘빠른 인정’이라고 했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 객관화’가 잘됐다는 뜻이다. 그는 “제가 아프다는 걸 빨리 인정한 게 가장 주효했다. 발목 부상을 당했을 때 예전보다 힘이 달리는 걸 납득했다. 옛날만큼의 힘을 되찾으려 무리해서 운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되는 게 눈에 보이니까 빠르게 인정하게 됐다. 타고난 제 성격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기할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상대방을 공격하지만, 실제 오상욱의 성격은 정반대다. 예민하지 않고 느긋하다. 말도 느린 편이다. 누리꾼들은 ‘무덤덤하고 감정 기복 없는 강인한 성격이 부럽다’, ‘말투나 성격이 무던하고 순둥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상욱은 “어머니, 아버지 성격과 비슷하다. 부모님은 크게 욕심이 없으시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에도 올림픽 무대를 밟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출전했다고 한다. 심지어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도 몰랐다.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기자님들이 말씀해 주셔서 저도 알고 있는 척 했다”고 농담을 섞어 말했지만, 그 정도로 개인 기록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오상욱은 “만약 올림픽에서 졌어도 ‘그래도 나는 밥 먹고 살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운동선수로서 이런 성격이 단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멘탈 훈련은 따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워낙 무덤덤한 성격 때문일까. 실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외모로 전 세계 팬들을 홀렸지만 정작 본인은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인기 폭발이다. 대전 출신인 오상욱에게 “요즘 ‘대전의 자랑’은 성심당과 오상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데?”라고 물어보자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성심당이랑 제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요? 말도 안돼요. 진짜 그렇다면 전 꿈을 다 이뤘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개인 첫 금메달리스트인 펜싱 사브르 오상욱이 파리 오메가 하우스에 들러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브리온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