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사' 김성식 감독, 10년만에 이룬 데뷔→스승들의 발자취[인터뷰]①

by김보영 기자
2023.10.03 07:30:00

애니메이터→'살인의 추억'보며 영화인 되길 결심
봉준호 감독 GV 무작정 찾아가 시나리오 건네
곽경택·장준환·연상호·봉준호·박찬욱 키드로 내실 다져
"'천박사' 잘되면 시즌2도…칠성검 이야기 다루고파"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추석 연휴 극장가를 독주 중인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 이하 ‘천박사’)은 김성식 감독이 연출부 생활 10년 만에 어렵게 세상에 내놓은 데뷔작이다. 김성식 감독은 원래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꿈꿨던 애니메이션 학도였다. 그런 그가 영화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을 보면서라고 한다.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 골방에서 책을 읽고, 거장들의 DVD 코멘터리를 독파하며 영화 작법을 공부했다.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 ‘무작정’의 인연으로 봉준호 감독을 만나 그의 연출부가 됐다. 봉준호 감독과 곽경택 감독, 장준환 감독, 연상호 감독, 박찬욱 감독까지. 영화학도가 평생 한 번이라도 좋으니 함께 일하길 꿈꾸는 국내 거장들의 작품에 연출부, 조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10년을 보냈다. ‘천박사’는 김성식 감독이 어깨너머로 체화한 스승들의 노하우와 철학, 여전히 살아숨쉬는 애니메이터의 기질과 감각을 조화롭게 살린 작품이다.

김성식 감독은 ‘천박사’의 개봉을 앞뒀던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27일 개봉한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 분)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천박사’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이었던 김성식 감독이 연출부 생활 10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장편 데뷔작이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뒀던 지난달 27일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 ‘거미집’(감독 김지운)과 동시에 개봉했다.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과 신인감독의 입봉작이 한 날 한 시에 겨루게 된 상황에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신인감독에게 막강한 두 작품과의 경쟁이 고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천박사’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압도적 관객 수로 올 추석 연휴 특수를 제대로 누린 유일한 승자로 군림 중이다. 개봉 이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개봉 5일째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지난 2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17만 명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사실 ‘천박사’는 개봉 전부터 강동원의 주연 소식과 함께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의 입봉작이라는 사실로 업계 및 예비 관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의 원래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었다고.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본 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영화계와 도무지 인연이 없었다고 한다. 김성식 감독은 인터뷰 중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애니메이터 출신으로서 영화 쪽 인맥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설국열차’란 만화를 시나리오로 혼자 각색해본 적이 있다”며 “고향이 울산인데 서울에서 봉준호 감독의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린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며 “그 자리에서 무작정 봉준호 감독님을 기다렸다. 어렵게 봉 감독님과 마주했고,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쓴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무작정 드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 생각하면 그랬으면 안되는데, 한 번 봐달라고 무작정 부탁드렸다. 봉 감독님은 당시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그런 제게 ‘이런 걸 왜 제게 갖다주세요. 이 영화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함부로 남에게 갖다 주면 안된다’고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셨다”고 떠올렸다.

그 때의 인연은 기회가 됐다. 시간이 흐른 후 영화 ‘설국열차’의 연출부로 일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지만 영어를 할 줄 몰라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그렇게 곽경택 감독의 ‘미운 오리 새끼’(2012)부터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의 연출부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다. 이후 ‘해무’의 제작자로 참여한 봉준호 감독과 재회했고,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시나리오를 보관 중이었다고 털어놨다. 재회를 계기로 ‘기생충’의 조감독으로 합류하며 봉준호의 제자가 됐다고 전했다.

‘천박사’를 내놓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다고 감사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김성식 감독은 “봉준호 감독님은 제 시나리오를 보시며 디테일하게 피드백을 주셨다. 또 다른 제자인 유재선 감독님 이야기를 하며 경쟁의식을 일깨워주시기도 했다”며 “‘유재선 감독 시나리오가 죽이더라, 열심히 해야 한다’며 자극을 주셨다”고 떠올려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봉 감독님, 박 감독님 두 분이 공통적으로 ‘유머를 남발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셨다”며 “악인을 표현할 때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주위 상황과 분위기로 그런 느낌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두 분 다 ‘이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라면서도 장기간 조언을 해주셨다”고 고마움을 밝혔다.



또다른 봉준호 키드인 ‘잠’ 유재선 감독도 극찬했다. 김성식 감독은 “영화를 봤는데 너무 잘 만들었더라. 부담이 컸다”며 “지금도 문자를 나누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너무 떨린다, 어떡하냐’고도 문자했다”고 전해 폭소를 유발했다.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과 차이점을 묻자 김 감독은 “봉 감독님은 정말 디테일하셔서 힘들었다. 요구하시는 리스트가 늘 산더미였다. 답은 있지만, 그 답을 찾는 게 힘들었다”고 토로하면서도, “늘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시며 팀원들과 소통을 많이 하신다. 디테일하시면서도 융통성과 배려심이 있으셔서 많이 배웠다. 또 축구를 좋아하셔서 축구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회상했다. 박찬욱 감독에 대해선 “감독들의 감독이랄까. 감독의 품위가 있으시다”며 “감독님께 위스키를 처음 배웠다. 영화의 품위, 감독의 품위가 무엇인지 많이 배웠다. 박 감독님은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셔서 주로 영화나 맛집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님이 엄마같다면, 박찬욱 감독님은 아빠 같으시다”면서도, “장준환 감독님과 연상호 감독님께 배운 점도 많아서 그 분들이 제 이야길 들으면 섭섭해하실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연상호 감독님과는 애니메이션으로 통하는 지점이 있었고, VFX 작업을 함께 하며 기발하고 순간의 번뜩이는 재치가 있으신 분이란 생각을 했다”며 “장준환 감독님은 정말 순수하시다. 진심으로 영화를 대하는 자세와 순수성을 배웠다”고 부연했다.

‘천박사’는 웹툰 ‘빙의’가 원작이다. 본인이 직접 쓴 오리지널 각본으로 입봉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일단 데뷔하고 보자는 마음이 컸다”며 “10년이나 영화를 했는데 데뷔하지 못할까봐 우울하고, 실망감이 있었다. 코로나19란 변수도 있었다. 다행히 제작사 외유내강이 기회를 줘서 필사적으로 임했던 기억”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외유내강과는 ‘군함도’의 연출부로 인연을 처음 맺었다고.

‘천박사’란 대본에 욕심을 낸 이유에 대해선 “애니메이터 출신으로서 이 영화를 통해 만화, CG적 요소를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나만의 색깔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고, 데뷔작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연출하며 중점을 둔 부분은 “영화의 전개에 있어 리듬감을 중시했다”며 “전사가 이미 있으니, 스토리 요소도 정말 관객들이 알고 싶어하는 포인트 핵심만 짚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첨언했다. 이 작품이 잘된다면 ‘천박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은 꿈도 있다고 귀띔했다.

‘천박사’에선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부부로 활약했던 박명훈과 이정은이 부잣집 가족 카메오로 깜짝 등장해 웃음을 안긴다. 김성식 감독은 “봉준호 감독님이 시사회 때 제 뒤에 앉으셨는데 그 부분에서 엄청 웃으셨다”며 “‘기생충’을 찍으면서 지하실 부부에 개인적인 연민을 갖고 있었다. 조감독 때 그들이 다시 태어나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느낀 염원을 반영한 장면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집도 일부러 ‘기생충’에 나온 집과 비슷해 보이게끔 구현했다”고 비화를 들려줬다.

이 영화가 잘되어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다면 시즌2를 제작할 의향이 충분하다고 어필하기도 했다. 김성식 감독은 “지금으로선 설레발일 수 있지만, 만약 운이 좋아 시즌2가 나온다면 ‘칠성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또 선녀 무당과 선녀의 이야기, 악귀 범천(허준호 분)에 얽혀있는 실타래들이 아직 남아있다. 이 요소들로 한국의 무속신앙을 좀 더 깊고 오리지널하게 다뤄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천박사’는 지난 27일 개봉해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