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순수 청년' 하현상의 시간이 흔적·궤적이 되는 마법

by김현식 기자
2023.08.28 06:30:00

콘서트 부문 심사위원 리뷰
하현상 '타임 앤드 트레이스'

(사진=웨이크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마치 사막 위에 피어난 가녀린 풀꽃 같은 느낌이다. 보기에는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사막 위에서도 굳건히 서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음악의 세계. 그 자리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바닥에 그림자로 다양한 선들을 그려내 온 이 풀꽃은 그렇게 순수한 청년의 시간을 보내며 흔적을 남기더니 이제 하나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바로 하현상이다.

지난 8월 5~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만난 하현상의 첫 콘서트 ‘타임 앤드 트레이스’(Time and Trace)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어딘가 어눌해 보이고 가녀린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하현상은 오프닝 후 첫 곡으로 2021년 발표한 ‘불꽃놀이’를 불렀다. 도입부부터 하늘을 향해 소리를 쏘아 올리는 듯한 고음으로 치고 나오는 이 곡은 편안한 기타 스트링과 오케스트라 같은 웅장한 사운드가 반복되며 하현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이어지는 곡은 올해 발매한 앨범의 첫 곡으로 수록된 ‘멜랑콜리’(Melancholy). 하현상 특유의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이 특유의 꾸밈없는 미성과 어우러진 곡이었다. 하현상의 곡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후크에 가까운 반복되는 멜로디가 한 번 들으면 귓가에 계속 여운을 남기는 이 곡은 앨범 제목이기도 한 이번 콘서트의 제목 ‘타임 앤드 트레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간 이 싱어송라이터가 걸어온 시간과 흔적을 다시금 꺼내보는 시간 말이다.

“본래 잘 떨지 않는데 긴장된다”는 말처럼 첫 콘서트라는 무게감이 분명히 느껴졌다. 하지만 곡과 곡 사이에 간간이 이어지는 관객들과의 소통은 화기애애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마다 하현상은 “이럴 때 질문을 던져 달라”고 주문했다. 현장은 관객 중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면 즉석에서 답변을 해주는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진=웨이크원)
첫 콘서트여서인지 곡을 좀 더 다이내믹하게 들려주려 한 노력도 엿보였다. 매번 곡마다 어울리는 기타를 바꿔 들었고, 드럼 비트와 기타 사운드는 훨씬 더 강렬해졌다. 피아노에 앉아 ‘굿 나잇’(Good Night) 같은 감미로운 발라드를 부르다가도 ‘하루가’ 같은 절절한 모던록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N차’ 관람하는 관객들을 위해 중간에 마련한 커버 무대에서는 델리 스파이스의 ‘차우차우’, 이소라의 ‘트랙 9’(Track 9) 등을 들려줬다.



하현상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그 감미로운 미성이 강렬한 사운드의 드럼비트와 기타 리프를 뚫고 나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야성적인 사운드와 엇박자를 이루는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대비적인 조화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미성에 빠져들었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외침을 마주하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팬들도 스타를 닮는다고 하던가. 여성 팬들이 거의 대부분인 객석은 차분하게 경청하듯 음악을 듣다가도 끝나고 나면 열광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마치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실물로 쳐다보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는 이 순수한 청년이 그간 걸어오며 성장해온 과정들이 흐뭇하게 걸쳐졌다.

JTBC ‘슈퍼밴드’에서 밴드 호피폴라의 보컬로서 우승을 했고, 카카오TV ‘고막소년단’을 통해 보이그룹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하현상의 정체성은 역시 싱어송라이터다. 2018년 데뷔해 현재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앨범과 곡들을 쏟아냈다. 그 시간들로 만들어낸 그의 궤적이 어떤 그림들을 그려갈지 못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