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코미디의 길' 폐지…반복되는 웃음의 '흑역사'
by김은구 기자
2014.10.15 07:21:12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MBC 코미디가 또 다시 길을 잃었다.
MBC 개그프로그램 ‘코미디의 길’은 방송 시작 5개월도 안돼 폐지됐다. 지난 5월11일 시작된 ‘코미디의 길’은 지난달 28일 이후 더 이상 방송되지 않고 있다. 2주째 결방됐다.
MBC는 ‘코미디의 길’ 폐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이미 9월 말 출연진인 개그맨들에게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통해 ‘폐지로 인한 회의 취소’ 소식을 전했다. 그 동안 함께 고생한 개그맨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도 없는 통보였지만 개그맨들은 비난의 말도 하지 않았다. 몇몇 개그맨들은 “놀랍지도 않다. 그 동안 MBC 개그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이 시청하기 좋지 않은 시간대에 편성됐다가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폐지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푸념했다.
2009년 ‘하땅사’를 시작으로 ‘꿀단지’, ‘코미디에 빠지다’에 이어 ‘코미디의 길’까지 MBC 개그프로그램들은 제대로 주목 한번 받지 못하고 폐지의 길을 걸었다. MBC 개그프로그램 암흑의 역사가 되풀이된 셈이다.
스타 육성 시스템 부재가 MBC 개그프로그램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지상파 개그프로그램은 대부분 각 방송사 공채 개그맨들이 출연진의 주축이 된다. MBC뿐 아니라 KBS ‘개그콘서트’, SBS ‘웃찾사’ 모두 마찬가지다. 그 중 MBC 개그프로그램들은 고참급 몇 명을 제외하면 ‘현재 진행형’ 스타 또는 예비 스타가 없었다. MBC 개그프로그램에서 배출된 스타는 지난 2006년 ‘개그야’의 ‘죄민수’ 조원석과 ‘사모님’ 김미려 이후 찾아볼 수 없었다. 스타가 없으니 코너가 화제가 되기도 어려웠고 결국 프로그램도 주목받지 못했다. 코너가 먼저 화제가 돼 출연진이 스타로 발돋움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시청하기 좋은 시간대에 편성됐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코미디의 길’은 일요일 밤 12시5분에 편성돼 있었다.
‘코미디의 길’에 출연하는 MBC 공채 개그맨들은 다른 프로그램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가능성이 있는 개그맨들도 다양한 출연 기회가 주어져야 자신의 ‘끼’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는 게 당연지사다. MBC 개그맨들은 대부분 버라이어티 등 다른 예능프로그램들에서 1회성 게스트 외의 역할을 얻지 못했다. ‘개그콘서트’ 출연진이 KBS 예능프로그램들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고 CF모델까지 섭렵하고 있는 상황은 MBC 개그맨들에게 언감생심이다.
| MBC 공채 개그맨으로 케이블채널 tvN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이국주.(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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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다른 예능프로그램 제작진도 고정 출연진을 발탁할 때 개그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공채 개그맨들은 생각도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개그맨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안주고 소모품처럼만 대한다’는 불만도 팽배해 왔다.
MBC의 한 개그맨은 “고정 투입 가능성에 대한 언질을 받고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일이 있었다. 녹화가 끝나고 나서 해당 프로그램 CP가 연출자에게 ‘재미있게 잘 했는데 우리 공채 개그맨을 쓰면 안되겠냐’고 하는 말을 들었다. 결국 내 고정 출연은 불발됐는데 그 방송사 개그맨들이 부러웠다”고 털어놨다.
현재 케이블채널 tvN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대세 개그우먼’으로 부상한 이국주도 MBC 공채 출신이다. MBC에서는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다 ‘코미디 빅리그’로 자리를 옮겨 스타가 됐다. 현재 SBS ‘룸메이트 시즌2’에까지 진출했다. ‘룸메이트 시즌2’는 각 방송사 예능의 간판이라는 일요일 버라이어티(‘일요일이 좋다’)의 한 코너다. 이국주가 MBC에 남아 있었으면 불가능했을 성과라는 평가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이국주가 타 방송사 개그맨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잠재돼 있던 자신의 ‘끼’를 제대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며 “MBC가 가장 개그프로그램 제작진과 개그맨 사이의 관계가 경직돼 있는데 이국주는 그런 MBC를 벗어남으로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