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 테마록]이승엽 연봉, 왜 5천만엔이 기준일까
by정철우 기자
2010.09.04 09:15:01
장훈씨 이승엽 일본내 이적 몸값 5,000만엔 언급
페타지니, 로즈 등 이전 사례 적용한 듯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최근 뜬금없이 이승엽의 몸값이 화제가 됐었다.
한국 야구의 영웅인 장훈씨가 방한하며 생긴 해프닝이다. 장훈씨가 한국 야구 관계자들에게 "이승엽을 원하는 팀들이 두어팀 있다고 들었다. 연봉 5,000만엔 수준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바로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프로야구는 아직 시즌은 남아 있고 요미우리는 포스트시즌까지 치러야 한다.
게다가 아직 이승엽은 일본에 남겠다는 결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만약 이승엽이 일본에 남는다면…'이란 전제로 몸값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러나 "왜 기준이 5,000만엔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있다. 이전의 사례들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는 지난 4월15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의 추정 몸값은 4,000만엔이었다.
페타지니는 지난 2004년 약 7억엔의 몸값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바 있다. 요미우리가 인정한 최고의 거포였던 그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요미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2005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이후 미국(트리플A 및 메이저리그)과 한국(2년)을 거쳐 다시 일본 무대로 돌아갔을 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대우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역시 요미우리를 거친 바 있는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외인 거포 터피 로즈 역시 한때 5억엔 이상의 연봉을 받던 최고 몸값 선수였다.
그러나 2006년 마이너리그 시절을 거친 뒤 다시 일본 프로야구의 문(오릭스 버팔로스)을 두드렸을 때 받은 연봉은 40만 달러(약 4,500만엔)에 불과했다.
물론 페타지니와 로즈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나이와 일본 리그를 1년 이상 떠났다가 돌아왔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일본 복귀 당시 나이가 이승엽과 최소 5년 이상 난다.
이승엽이 아직 충분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나이(34세)인 점을 감안하면 직접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페타지니와 로즈는 이승엽 이상의 결과를 일본 프로야구에 남긴 선수들인다. 로즈는 시즌 최다 타이인 55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 페타지니 역시 5차례나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바 있다.
이 중 로즈는 일본 복귀 후에도 두차례나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냈다. 연봉도 3억엔 이상으로 다시 껑충 뛰기도 했다.
이들의 상황은 이승엽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공인된 거포지만 당장 눈 앞에서 보여준 성과는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 프로야구를 떠나 있었다는 것도 마이너스였다.
이들에게 제시된 연봉 4,000~5,000만엔은 그들의 기량에 대한 평가라고 하기 어렵다. 쉽게 말하면 '기대는 해볼 수 있지만 실적이 없으니 일단 보험용으로…'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정도 가치의 선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지켜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이승엽의 추정 연봉도 비슷한 수준에서 유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승엽의 파워는 여전히 인정하지만 1군에서 보여준 수치는 초라한 수준이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승엽은 최근 3년간 29개의 홈런을 때려내는데 그쳤다.
일본 프로야구는 보장 연봉 외에도 다양한 옵션 계약이 존재한다. 연봉 이상의 돈도 챙길 수 있다. 또 일단 검증을 마치면 단박에 이전 수준의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엽에게 "명예회복을 위해선 수모를 감수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낮은 몸값은 그만큼 불리한 여건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4,000~5,000만엔을 받는 외국인 선수는 어디까지나 보험용이다. 실패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기회를 얻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출발선부터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또 다른 외국인 선수나 팀 내 유망주에게 기회를 내줘야 한다. 따져보면 현재 요미우리에서의 현실과 달라질 것이 없는 셈이다.
이승엽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또 최대한 몸값 협상을 한 뒤 가장 좋은 조건을 택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