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PD의 연예시대③]'묻지마 한류'가 남긴 폐해와 후유증

by윤경철 기자
2009.06.09 08:12:16

▲ '묻지마 한류 관광상품'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한류스타들. 배용준, 비, 송승헌(사진 왼쪽부터)

[이데일리 SPN 윤경철 객원기자] 한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몇 년 전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를 삼킬 듯 했던 한류가 냉랭한 한류(寒流)로 변해가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시작됐던 일본 내 한국 드라마의 열풍은 온 데 간 데 없고 일본 박스오피스를 호령하던 한국 영화의 개봉도 뜸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수십만 명을 움직이던 한류스타들의 위용도 최근엔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중문화 자체가 트렌드에 민감하고,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한순간에 한류가 이렇게까지 고비를 맞게 된 건 분명 의외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생겨났을까.

한류가 이렇듯 망가진 데에는 돈만을 밝혀온 ‘묻지마 한류’의 영향이 적지 않다. 한류의 생성과정과 그것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한탕주의에 입각한 ‘묻지마 한류’에 치중한 결과 이 같은 부작용들이 생겨난 것이다.

‘겨울연가’가 히트하기 전까지 국내 한류는 철저하게 문화적인 접근이 주류를 이뤘다. 일본을 겨냥해 함량 미달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보다는 완성도가 높으면서 다양성을 갖춘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려 노력했고, 이에 대한 외부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연가’가 빅 히트하고 이를 통해 수백억 원을 거머쥐는 한류스타가 등장하자 국내 제작자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문화적인 접근보다는 사업적인 마인드로 한류를 대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한류의 쇠퇴를 알리는 시발점이 됐다.

한류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자 배우들은 터무니없이 출연료를 올리기 시작했고 국내 제작자들도 코스닥 시장에서 목돈을 끌어와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한류스타 몇 명을 섭외하는데 열을 올렸다. 초반에는 한류 열풍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이런 한류스타를 앞세운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 내 한국 영화의 수익이 감소하면서 상영을 망설이는 수입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만을 봐도 그렇다. 일본의 한 영화수입업체 관계자는 "비싼 돈을 주고 한국영화를 수입하고도 흥행여부가 불투명해 개봉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재 개봉 대기 중인 작품이 수십 여 편에 이른다"고 전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 드라마도 위기다. 지상파에 편성되는 국내 드라마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를 중국 홍콩 대만에서 제작한 화류 드라마가 대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겨울연가’나 ‘대장금’을 이을 후속작이 생겨나지 않으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류스타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스타 자체를 금전적 상품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스타를 단순히 상업적인 가치로만 판단을 하다보니 이를 둘러싼 사기 행각도 끊이질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한류스타의 팬미팅이나 스타숍을 둘러싼 사기 행각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실제 피해사례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한다.

스타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이뤄지는 ‘묻지마 해외 팬 관광상품’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묻지마 해외 팬 관광 상품’은 배우의 허락을 받지 않고 촬영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스타들이 참석하는 시사회는 물론 비공개 결혼식 방문까지 서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스타들이 참석하는 기자 시사회에 언론관계자들이 정작 표를 구하지 못하고, 결혼식에 해외 팬들이 대거 참석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실제 올 초 한류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던 ‘겨울연가’ 윤석호 PD의 결혼식에는 하객보다 일본 팬들이 더 많이 참석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묻지마 한류’가 판을 치고, 이런 가운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스타들과 관계없이 진행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해외 팬들은 피해를 구제 받을 길이 전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