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 리뷰]'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왜 아카데미를 열광시켰을까?

by김용운 기자
2009.03.21 08:10:18

▲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15세 관람가/19일 개봉)는 올해 아카데미가 선택한 최고의 작품이다. 11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등 8개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트래인스포팅’으로 유명한 대니 보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를 배경으로 고아로 자란 열여덞살 소년 자말이 억대 상금이 걸린 TV 퀴즈쇼에 나가 승자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미국 아카데미가 ‘포레스트 검프’와 맥을 같이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열광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영화 자체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요즘같이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시대에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개인의 불행은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던 자말이 교수나 변호사 같은 지식인들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퀴즈쇼에서 우승을 할 수 있던 것은 그간의 인생역정이 질문으로 나와서다. 자말은 문제의 답을 미리 안 것이 아니라 퀴즈쇼 사회자가 낸 문제를 인생으로 경험했다. 자말은 유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기억하고 잊지 않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어릴 때 첫눈에 반한 라티카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자말이 퀴즈쇼에 나간 이유 역시 유명해져서 라티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영화는 이처럼 불우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인생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잃지 않은 자말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뿌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대니 보일 감독은 자신의 특기인 감각적인 영상으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완성했다. 영화 도입부의 뭄바이 빈민가를 질주하는 꼬마 자말의 모습은 매끄럽고 유연하면서도 단번에 시선을 잡는다. 비록 인도 빈민가의 현실은 비루하고 비참해도 대니 보일 감독이 담아낸 화면 속 인도 빈민가는 서정적이고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든다. 덕분에 영화는 불편하거나 거북스럽지 않다.

하지만 차분한 시선으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 영화는 여러 모로 불편한 부분이 있다. 인도의 경찰은 자말이 퀴즈쇼에 나와 속임수를 썼을 것 같다는 심증만으로 자말에게 전기고문을 가한다. 자말의 형 살림은 십대에 살인을 저지른다. 자말이 사랑하는 라티카는 앵벌이 조직에서 인권유린을 당한다. 이러한 상황이 영화에서는 묘하게 미화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최근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작품 중에 가장 역동적이고 흥겨운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두 어 시간의 상영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속도감 있는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는 오락영화로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자말의 성공스토리를 위해 인도의 빈민가와 사회문제가 일종의 배경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남는다. 물론 대니 보일 감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사회고발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라고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주지시키지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개봉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로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페르난도 메이렐리스 감독의 데뷔작 ‘시티 오브 갓’의 관람을 추천한다. 인도 빈민가 못지않은 브라질 빈민가에서 자란 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티 오브 갓’은 원작 소설을 옮겼다는 점과 빈민가 소년들의 성장담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여러모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비교가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