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의 친구,야구]양키스 '보물' 챔벌레인... 장애자 아버지 헌신적 사랑(2)

by한들 기자
2007.09.01 12:32:50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자, 이제 현역 빅리거 중 '유이'하게 '네이티브 아메리칸' 인디언(다른 한 선수는 필라델피아 우완 선발 투수 카일 로쉬로 올 시즌 7승12패, 방어율 4.54를 기록 중 입니다) 챔벌레인에 대해 알아보죠.

챔벌레인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수우족의 한 부족, 위너베이고우족(북동부 네브라스카)인 아버지 할란 챔벌레인과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할란은 생후 한 살이 안 돼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때문에 '레저베이션(Reservation)'으로 불리우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떠나 병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병세는 악화돼 왼쪽 팔을 못 쓰고, 왼쪽 귀의 청력을 잃고, 급기야 절룩거림이 심해져 전동 스쿠터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그는 일찍 결혼해 5살 위인 딸 타샤와 챔벌레인을 낳았지만 이혼의 아픔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이기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운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 참고 견디면 무엇이든지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몸으로, 삶으로 보여 준 '롤 모델'이었습니다. 천형의 몸으로 26년간 교도소의 카운셀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 가는 한편,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쳤습니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정상인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아들과 늘 캐치볼을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였습니다. 오른손으로 공을 받고, 다시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빼고, 또다시 오른손으로 아들에게 공을 던져 줬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곁을 떠나기 싫어 챔벌레인은 열 한살 때까지 한 침대에서 잤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관을 갓 넘긴 챔벌레인은 이렇게 의젓하게 말합니다. "우리 집은 늘 돈에 쪼들렸고 많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랑과 존경이 넘쳤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는 야구란 게임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챔벌레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빅리거가 된 지금도 변함없고, 더욱 커졌습니다. 경기 전 빠짐없이 2분간 통화를 하고, 이후엔 하루에도 몇 번씩,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이 안 된다. 아버지는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네브라스카의 주도인 링컨 집에서 아들의 경기를 컴퓨터로 보며 감격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할란은 9월8~10일 양키스가 캔자스시티로 원정 경기를 하러 올 때 보러 갈 계획을 잡아 놓고, 생전 첫 양키스타디움 방문을 위해 전동 스쿠터를 어떻게 운반할지를 항공사와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또 하나의 소수 인종으로 전락해 '인디언 보호구역(광활한 평원과 숲을 빼앗은 백인들이 몰아넣은 황무지나 다름없어 유폐 지역이 차라리 어울리는)'에서 카지노 사업의 배당금으로 살아가는 인디언. 그러나 챔벌레인은 자신이 인디언이란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란 위너베이고우 보호구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고, Pow Wows(북아메리카 인디언 모임)에도 매년 참석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은 나의 분신이다. 앞으로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며 "많은 인디언 어린이들이 다른 어린이들에 비해 기회가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임감을 느낀다. 기꺼이 그 책임감으로 일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합니다.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챔벌레인은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유망주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270파운드가 넘게 나가는 체중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교도 2부리그인 디비전Ⅱ의 네브라스카 키어니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면서 '땀의 소중함과 꿈을 쫓아야 한다' 는 것이 몸에 밴 그는 체중을 줄이고, 피칭을 다듬고, 다듬는 노력 끝 에 네브라스카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정진한 끝에 팀을 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켜 결국 인디언 선수로는 역대 드래프트 최고 순번인 41번째로 양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토리 감독이 "필 휴즈(또 다른 양키스의 21세 유망주 투수)였으면 모를까. 이름은 듣긴 했으나 싱글A 선수가 이렇게 일취월장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뒤늦게 무릎을 친 챔벌레인의 미래에 대해서 양키스는 신중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챔벌레인 룰'을 만들어 놓고 이닝 수에 따른 휴식일 과 투구 수를 조절할 정도입니다. 일단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불펜이지만 내년부터는 선발 투수로 기용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리베라의 노쇠화가 짙어가고 있는 만큼 마무리 투수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도 "링컨에 있는 16개월 된 아들과 아내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는 챔벌레인은 "요즘은 정말 내가 경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매일매일 책에 새롭게 수록하는 것 같다"며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한 듯 벅찬 기분을 밝혔습니다.

앞으로 그의 팔이 메이저리그에서 써내려갈 '인디언 부활사'가 더욱 흥미진진하고 주목됩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챔벌레인의 훠스트 네임, 즉 이름 'Joba'는 여러 가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본인도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점입니다. '자버'라고도 하고, '조버'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본인에 따르면 정확한 발음은 '자버'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이 '조버'로 불려지게 된 것은 순전히 친척 동생이 잘못 발음한 게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원래 '저스틴'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저스틴'이란 이름을 되찾는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의 이름 또한 '저스틴 챔벌레인'으로 제대로 발음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