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쿡방 가고 '범죄 심리 예능' 시대
by김가영 기자
2022.04.13 05:30:02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포스터(사진=S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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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범죄 심리 예능이 방송가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주류였던 먹방·쿡방의 자리를 범죄 심리 예능이 대신 차지하는 분위기다. 현직 형사들이 출연하는 포맷부터 사건을 재구성한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형태들이 선보이고 있다. 같은 장르라고는 하지만 각자의 차별화를 내세워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범죄사건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KBS1 ‘추적 60분’ 등 사건을 추적하고 진실을 쫓는 ‘탐사 보도’ 포맷으로 시사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다. 최근 예능에서 선보이고 있는 방식은 다르다. 사건을 겪은 한 인물의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거나, 범죄자의 성장 과정과 심리를 파헤치는 ‘이야기화’된 형식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시즌3까지 이어지고 있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이하 ‘꼬꼬무’)다. ‘꼬꼬무’는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스토리텔링해 각자의 친구에게 1:1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구성은 시청자들이 사건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사건에 빠르게 몰입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사건을 기억하는 인물들의 인터뷰와 사건과 관련된 소품이 등장하며 풍성함을 더한다.
같은 범죄·심리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풀어내는 방식에 차별화를 두고 있다. 채널A ‘블랙:악마를 보았다’는 현실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한다.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와 다양한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 ‘악역 전문 배우’ 최귀화가 출연해 사건을 스토리텔링하고 범죄자의 심리를 풀어내며 사건에 접근한다. 특히 범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드라마 형식 영상을 통해 사건 자체보다 범죄자에 포커스를 맞춰 그 안의 심리를 꿰뚫게 하며 범죄를 예방하는 순기능을 추구한다.
특별한 출연진을 꾸려 차별화를 시도한 프로그램들도 있다. tvN ‘알쓸범잡2’는 프로파일러 권일용부터 사회부 기자 출신의 소설가 장강명, 인권 전문 변호사 서혜진, 경력직 과학박사 김상욱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출연해 범죄 사건을 살펴보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의 분야 만큼이나 범죄심리학적·법적·과학적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본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식을 쏟아내다 보니 ‘알쓸범잡2’는 사건 그 자체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예방하는 법까지 학습하게 한다.
E채널 ‘용감한 형사들’은 다양한 범죄 예능 속에서 현직 형사들이 출연한다는 차별점을 띈다. 형사들이 출연해 범죄와 관련된 생생한 에피소드부터 예방법 등의 정보, 의미 등을 짚어준다. 특히 미제사건이 아닌 처벌을 받은 사건들을 다뤄주면서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로 인한 안도감과 통쾌함을 선사한다.
최근 방송가에 다수 나타난 범죄 심리 예능은 기존에 있는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추적 60분’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등장 배경이 다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방송가에는 스튜디오 중심의 예능이 선호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들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게 범죄 예능이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예능의 소재 고갈 현상이 뚜렷해지는 양상이었다”며 “야외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측면 때문에 스튜디오 예능의 선호도가 높아졌는데 범죄 예능은 사회적 의미와 공익성도 겸비했다는 점에서 신변잡기적인 전통적 토크쇼보다 호응이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 방송사 예능국 관계자는 최근 범죄 예능의 경쟁적 증가에 대해 “일부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다 보니, 2등 전략을 목표로 제작을 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최근 뉴스 등을 통해 자극적인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범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범죄 심리 예능은 실제 발생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단순히 이를 재구성하고 전달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된다. 사건과 관련해 아픈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전개하는 것은 2차 가해의 우려가 있다. 또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예방의 효과도 지녀야 한다.
김 평론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경우는 미제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범죄 예능은 여타 예능 소재와는 다르기 때문에 공익적 예능을 지향하지 않으면 의미도 시청률도 가치가 없을 것 같다”고 일침했다. 이어 “범죄 사건을 다룰 때의 방식도 중요하다”며 “자극적으로 공포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얼마나 원하는 내용이고 원하는 방향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