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있다면 기회는 오더라구요" 보험맨으로 성공한 전 SK 양현석
by이석무 기자
2021.03.27 06:00:00
| 프로야구 선수 은퇴 후 자산관리사로 성공한 양현석 신한금융그룹 오렌지라이프 FiRST지점장. 사진=이석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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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운동을 그만뒀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죠.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을 사회에서 깨달았습니다”
전 프로야구 선수 양현석(44)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신한금융그룹 오렌지라이프 보험회사를 방문했다. 넓디넓은 사무실을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실에는 말쑥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책상에는 ‘신한금융그룹 오렌지라이프 FIRST 지점장 양현석’이라는 명패가 자리하고 있었다. 성공한 자산관리사로 ‘제2의 인생’을 활짝 연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
2000년 해태타이거즈의 프로야구 개막전. 당시 ‘코끼리’ 김응용 감독은 낯선 이름의 선수를 중심타선인 3번에 기용했다. 당시 야구 팬들과 관계자들은 ‘저 선수가 누구야’라고 의아해했다. 주인공은 당시 경희대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신인타자 양현석이었다.
양현석은 홍성흔, 정대현 등과 함께 경희대를 대학야구 정상에 이끈 주역이었다.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활약하면서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도 경험했다. 프로 입단 당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더 받았지만 김응용 감독은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봤다.
해태에서 첫 시즌 89경기에 출전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양현석은 이듬해 SK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됐다. SK에선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2001년 113경기에 출전했고 2002년에도 88경기에 나왔다. 붙박이 주전은 아니었지만 대타, 대수비로 요긴한 활약을 펼쳤다. 2001년에는 두자릿수 홈런(11개)을 때리기도 했다. 2003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선 대타로 나와 결정적인 적시타를 터뜨리며 ‘슈퍼 대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계속된 고질적인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스스로 “하루라도 안 아픈 상태에서 운동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2004년에는 당시 프로야구 최고 마무리투수였던 이상훈과 트레이드돼 LG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 LG에 오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재활과 2년의 병역 의무를 마치고 2007년 돌아왔지만 고질병인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프로야구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양현석은 은퇴 후 보험 영업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었다. 체육교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고 고교 야구코치 제의도 받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보험 영업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도 있었다. 처음에 제의를 받았을 때는 얘기도 들어보지 않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하지만 당시 회사 지점장을 만난 뒤 생각을 바꿨다. ‘운동할 때처럼 1년만 딱 열심히 해보고 안되면 때려치우자’라고 마음 먹은 뒤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게 어느덧 13년이 지났고 지금 그의 이름 뒤에는 ‘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보험 영업맨으로 변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야 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만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네 모습이 운동할 때보다 더 힘든가’라고 스스로 되물었다.
의지를 갖고 도전하니 길이 열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1년 만에 억대 연봉에 도달했다. 자산관리사 가운데 상위 8%만 가입할 수 있다는 ‘라이언’ 지위도 2년 만에 획득했다. 부지점장을 거쳐 지점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의 길을 뒤따르는 프로야구 후배들도 늘어났다. 과거 SK, LG에서 활약했던 투수 김장준과 KIA 선수로 1군 무대를 누볐던 김다원, 홍재호 등이 그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양현석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노하우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에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운동을 그만 뒀을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야구 외적인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무슨 일이건 간에 잘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생각하기 보다는 직접 듣고 잘 알고 나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어요”
다음은 양현석 신한그룹 오렌지라이프 FIRST지점장과 일문일답.
△2000년에 해태에 입단해 2007년 LG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아마도 팬들은 SK 시절을 많이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시리즈에 대타로 나와 안타를 쳤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운동하면서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결국 프로야구 선수가 됐고 국가대표도 했으니 할 수 있는 경험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부상이 많았다는 것이었죠. 마지막에는 딱 1년 만이라도 안 아픈 상태에서 운동해보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부상이 많았다는 것 빼고는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홍성흔 선수가 1년 선배였고 정대현 선수가 1년 후배였습니다. 전국대회 우승도 했죠. 그 시절이 경희대 야구부 역사상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의료체계가 아니었어요. 허리가 안좋았지만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은 안고 가는 것이라 생각했죠. 프로 입단 때부터 사실 허리디스크가 심했습니다. 해태에 입단했을 때 김응룡 감독님이 신인인 저를 개막전 3번 타자로 기용해주셨어요. 잠실구장에서 두산베어스와 경기를 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회는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제가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죠.
△그때 SK에서 한국시리즈 준우승하고 LG로 트레이드됐습니다요. 이상훈 선배하고의 트레이드였어요. 개인적으로는 SK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트레이드였습니다. 그리고 LG에서 메디컬테스트를 받으면서 팔꿈치가 굽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MRI를 찍는데 팔꿈치가 안좋아서 수술을 바로 하게 됐죠.
△그때 LG 사장님께서 “너를 트레이드 한 것은 금액으로 따지면 10억원 이상 가치로 평가한 것이다. 열심히 해보자”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병역 의무를 마치고 운동을 하려는데 허리디스크가 다시 터졌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2~3일 동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나름대로 재활을 열심히 했는데 그때 ‘이제 더 이상 운동을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구단 사장님이 ‘운동을 하려면 수술을 해야 하고 1년 이상 재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구단에서 그렇게 기다려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단에서도 사실 많이 기다려줬죠. 구단에서 막상 방출 통보를 받았을때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는지 의외로 담담하더라구요. 그전부터 선배들로부터 ‘운동을 그만두면 공황상태가 와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지 빨리 결정하고 다음 시간을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체육교사 자격증이 있어서 학교 교사 제의를 받았습니다. 모교 고교팀 야구 코치 제의도 있었구요. 하지만 운동을 그만두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생각해보니 운동보다 다른 쪽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영업이나 자동차 딜러도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처음에 자산관리사 제의를 받았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만나자는 제의도 뿌리쳤어요. 하지만 당시 회사 지점장님에게 직접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고 13년 동안 이 자리에 있게 됐습니다.
△영업, 특히 보험 영업은 사회적으로 선입견이 있는 직업입니다. 솔직히 제 성격은 활발하지 않고 내성적인 편이죠. 주위 친구들이 내가 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했고 열이면 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딱 1년 동안 내가 운동한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30대 초반이었는데 ‘1년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해도 큰 문제가 안되겠다’고 생각했죠,
△영업이다보니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참 중요합니다. 자산관리사 일을 하면서 회사가 제시하는 시책들은 대부분 달성한 것 같다. 자산관리사들이 올라가는 라이언이라는 지위가 있는데 이것을 2년만에 달성했습니다. 이후 부지점장을 거쳐 지점장까지 오면서 나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항상 스스로 되묻는 질문은 ‘운동할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소득이 운동할 때보다 몇 배에 이르는데 솔직히 힘들기로는 운동할 때가 훨씬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야구할 때 열심히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어요. 이유가 부상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결과가 비례해 따라온다는 것을 느낍니다. 운동하던 시절 마음가짐을 갖고, 하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기회는 오히려 더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괴물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프로야구라는 시장 자체가 큰 시장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현역 선수가 들어왔다면 ‘저 친구는 성격은 둘째 치고 많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겠구나’라고 봤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제 성격이 소심하다 보니 운동선수에게 잘 못가겠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에는 모르는 분들을 소개받아 만났는데 그렇게 해도 목표했던 부분을 잘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야구선수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선수들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제 성격상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운동을 그만뒀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야구 외적인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잘 알고 나서 그것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제가 나름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 일이 이직율이 높은데 저는 한 곳에서만 13년째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런 마음을 유지할 것입니다. 지금 소속된 회사에서 더 노력해서 사업단장이나 본부장 같은 더 큰 역할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 2004년 LG트윈스 시절 양현석(왼쪽). 홈런을 치고 들어온 최동수를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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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SK와이번스 대 KIA타이거즈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중전 적시타를 터뜨린 양현석(왼쪽)이 더그아웃에서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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