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방송사고…韓드라마 사전제작은 언제쯤?

by김윤지 기자
2019.03.28 06:00:30

(사진= 방송화면 캡처)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인터넷 주소 다 지워주세요.”, “창 좀 어둡게.” 드라마 보다 더 극적이다. 드라마 방영 도중 스크립트와 편집 수정요구 사항이 그대로 화면에 노출됐다. 지난 21일 벌어진 SBS 수목 미니시리즈 ‘빅이슈’ 방송 사고다. SBS는 다음날 “컴퓨터 그래픽(CG) 작업이 완료되지 못한 분량이 수차례 방영되며 사고가 났다”고 사과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만성적인 ‘생방송 촬영’에 있다. 시간 부족이 제작진의 부주의로 이어졌고, 방송 사고라는 대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생방송 보다 못한 사전제작도, 최악이죠”

방송 일정과 거의 맞물려 돌아가는 촬영을 ‘생방송 촬영’이라 말한다. 주 68시간에 눈 감은 제작진이라면 밤샘 촬영, 끝 모를 대기 등도 따라붙는다. 당연히 피로는 누적된다. 부상이나 방송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3월 종영한 tvN 드라마 ‘화유기’가 대표적이다.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스태프가 세트장에서 낙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CG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영상이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불과 15개월 만에 ‘빅이슈’라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됐다.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방송가의 노력이 아예 없진 않았다. 문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영 중인 MBC 월화 미니시리즈 ‘아이템’은 당초 사전제작으로 기획됐다. 지난해 9월 촬영을 시작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촬영 종료 시점은 1월 말이었다. 2월 중순부터 주인공 주지훈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촬영은 두 달 늦어진 지난 21일 종료됐다. 늦장 촬영 탓이었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에 6개월이란 제작 기간까지 투입했지만 결과는 씁쓸했다. 3~4%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아이템’ 측 관계자는 “촬영 기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책임감 없다’는 말만 돌아오기 때문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럴 바엔 차라리 생방송 촬영이 낫다”고 하소연했다.



‘눈이 부시게’ 포스터(사진=드라마하우스)
◇‘눈이 부시게’, 사전제작의 좋은예

‘생방송 촬영’이 한국 드라마의 강점으로 꼽힐 때도 있었다. 시청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눈이 부시게’나 지난해 인기작 tvN ‘백일의 낭군님’은 방영에 앞서 촬영을 완료한 작품들이다. 후반작업까지 공을 들인 덕분에 웰메이드 드라마로 사랑을 받았다. ‘생방송 촬영=인기 요인’이란 설명이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지 말해주는 좋은 예다. ‘눈이 부시게’ 주연 배우였던 남주혁은 “밤샘 촬영은 없었고, 야외 촬영도 새벽에 끝난 날이 손에 꼽는다”면서 “대부분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났다. 배려 덕분에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광풍’이 불었던 2015년 전후 사전제작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중국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기 위함이었다. 한한령 이후 사전제작의 필요성은 다시 잠잠해졌다. 특정 작가나 PD, 제작사 등 누군가의 노력 의존해 극히 일부에서 사전제작이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사전제작을 시스템화 시키는 노력을 강조한다. 결국 생방송으로 이어지는 ‘쪽대본’, ‘늦장 촬영’ 등을 제한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 혹은 프로듀서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박상주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는 제작 일수를 줄여 제작비를 아끼려는 제작사, 뚜렷한 콘티 없이 ‘찍고 보자’는 PD, 제때 대본을 쓰지 않는 작가 등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박 겸임교수는 “단순한 현장 관리를 뛰어넘어 작가·감독과 함께 현장을 이끌어 가는 역량 있는 프로듀서가 육성돼야 한다”며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지만 결국엔 드라마도 사업이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한류의 내실 다지기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