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 "더는 악몽을 꾸지 않아요..상처를 연대로 치료"
by고규대 기자
2018.10.22 01:00:00
|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추상미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장편 영화로 감독 데뷔한 소감을 밝혔다.(사진=보아스필림,커넥트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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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상처의 연대’. 2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한 배우 추상미가 감독의 키워드다. 출산 후 매일 아이가 죽는 꿈에 시달리는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추송웅에 대한 그리움은 슬픔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대학에서 연출 공부를 시작하면서 영화 제작이라는 도전으로 치유를 시작했다. 그 안에서 자신처럼 상처 입은 이들을 만났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자신의 상처도 시나브로 치유됐다. 이제 더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우연히 꽃제비(북한에서 거주지가 없는 아이) 영상을 봤어요. 먹을거리가 없어서 산에서 풀을 뜯는 모습이었죠. 제 아이처럼 느껴졌어요. 그 시기에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에 대한 실화를 받고 고통으로 읽히는 것, 눈물이 나면서 이상했죠. 운명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꽃제비에 대한 궁금증은 1950년대 전쟁고아 1,500여 명이 폴란드로 건너갔었다는 실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세계전쟁의 후폭풍으로 폐허가 된 폴란드 바르샤바와 한국전쟁의 흉터로 폐허가 된 북한 평양의 상처,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폴란드의 고아가 성장해 북한에서 온 고아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만남. 상처의 연대에 대한 상상은 그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의 이야기를 접한 건 2014년이었고 그때부터 1년 반 정도 극 영화 시나리오를 썼어요. 과거 전쟁고아들을 거뒀던 프아코비체 양육원 원장님이 현재 93세인데 이야기를 하던 중 이 내용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 먼저 다큐멘터리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31일 개봉하는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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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개봉을 앞둔 장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제작 커넥트픽쳐스·31일 개봉)이다.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그루터기’(가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에 캐스팅된 탈북민 출신 배우 지망생 이송과 폴란드 프와코비체 양육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송은 여명학교 등에 다니는 탈북민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으로 뽑은 몇 명의 배우 중 하나다. 이 영화의 매력은 실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추상미 감독이 자신이 상처를 어떻게 드러내고, 이송과 함께 어떻게 그 상처를 풀어내는 기법이다.
“운명적으로 흘러간 시간이었어요. 그 여정을 그대로 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영화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지 않으면 뜬금없어 친절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이야기부터 시작했어요.”
1973년생인 추상미 감독은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고 추송웅의 딸이다. 1994년 연극 ‘로리타’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뒤 배우로 활약했지만 2008년 드라마 ‘시티홀’을 끝으로 연기를 접었다. 추상미는 영화에서 자신의 말로 연기를 접게 된 자신의 고민을 드러낸다. 추상미는 배우를 준비하는 이송에게 “상처가 배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가”라고 묻는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상처를 차마 말 못하는 이송에게 자신을 되돌아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배우는) 상처를 객관화해야 한다”라는 또 다른 대사는 배우로서 회의감을 가졌던 자신에게 또 다른 다짐을 하는 말과 다름없다.
“단편영화를 두 편 찍었어요. 두 작품 모두 상처에 대한 고민만 하다 끝난 듯해요. 이제 나름의 해답을 찾았어요. 폴란드 선생님들이 역사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를 품는 데 선하게 썼잖아요. 개인의 상처에서든 역사의 상처에서든 선한 무언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죠.”
영화 말미에 93세의 나이에 접어든 폴란드 선생님이 “그때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라고 말한다. 추상미는 통일이 추상적이었으나 그 말을 듣고 자신에게 통일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전달하려면 통일이 되어야 하잖아요. 전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경험들을 통해 상처에 연대하고 공감하면서 한 발짝 나아가게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