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라 “‘김비서’, ‘왕뚜껑 소녀’ 벗어나게 한 인생작”(인터뷰)

by김윤지 기자
2018.08.06 06:30:02

사진=UL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어머, 메시지가 왔어요. (실시간 검색어로 오른 남자친구인 차현우가)요즘은 본명으로 영화 만든다고 슬쩍 말해달래요. 하하.”

이렇게 유쾌할 수 있을까. 발을 동동 구르며 모두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만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배우 황보라였다.

작은 얼굴을 꽉 채운 이목구비와 잡티 없는 피부. 천생 여자일 것 같지만 인터뷰 내내 화통했다. 공개 연애 중인 영화 제작자 김영훈(예명 차현우)에 대한 질문에 “꿈과 희망이 없어 인생이 재미없다”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스스로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는 그의 얼굴에서 지난 캐릭터들이 스쳐지나갔다. 모두 솔직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이들이었다.

사진=본팩토리
◇“뽕 연기·콜라 트름신, 힘들었지만 보람”

특히 지난달 26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극본 백선우, 연출 박준화)의 봉세라 과장은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은 황보라의 ‘최애’ 캐릭터였다. 여주인공 김미소(박민영 분)와 우정부터 양 비서(강홍석 분)와 귀여운 로맨스까지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는 그는 “부담 없이 시작했다. 감사할 따름”이라고 활짝 웃었다.

당초 시놉시스에 봉 과장은 단 세 줄로 설명되는 작은 역이었다. 원작인 웹소설에도 없는 인물. 그런 봉 과장을 주요 캐릭터로 만든 것은 황보라의 만취 연기였다. 첫 촬영이었던 회식신에서 황보라는 “확 내려놨다”. 과장된 연기와 실제 연기를 뒤섞었다. “진짜 취한 거 아니냐”는 시청자의 반응을 얻었지만 치열하게 계산된 연기였다.

덕분에 코믹한 장면이 여럿 탄생했다. 대표적인 것이 ‘뽕 탈출신’이다. 벌 때문에 몸부림치던 봉 과장의 속옷 ‘뽕’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이다. 민망한 상황에 처한 봉 과장을 양 비서가 구해주며 로맨스가 시작됐다. 황보라는 “이 장면 때문에 ‘봉 과장’으로 작명했다. ‘뽕’이 100번은 더 넘게 떨어졌다. 그 장면만 3시간을 촬영했다”고 후일담을 털어놨다. 이밖에도 음향 효과로 대신하자는 박 PD의 제안을 거절한 후 콜라 2리터를 마시고 ‘용트림’을 한 ‘콜라 고백신’, 어쩔 수 없이 먼지를 한껏 마셔야 했던 ‘대걸레 난투극’, 대본상 XXX로 표시됐지만 적나라한 대사로 박서준을 부끄럽게 만든 한 ‘여직원 술자리신’ 등 숨은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사진=‘김비서가 왜 그럴까’ 방송화면 캡처
◇“망가지는 예쁜 여배우, 나의 차별점”

황보라는 2003년 SBS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2005년 라면 CF 통해 ‘왕뚜껑 소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크고 작은 역할로 꾸준히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한 방’은 없었다. 공백기도 겪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특별출연한 KBS2 ‘쌈 마이웨이’는 전환점이 됐다. 실제 활발한 성격을 반영한 캐릭터였다. 이는 지난 5월 종영한 KBS2 ‘우리가 만난 기적’ 등으로 이어졌다. 박준화 PD 역시 ‘쌈 마이웨이’를 보고 봉세라 역을 제안했다.



“‘쌈 마이웨이’ 출연 후 예전 소속사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잘 봤다면서 예전에는 제가 그런 캐릭터를 기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잘하는 게 따로 있는데 괜히 멋있어 보이는 배역만 고집했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이 분야’를 공략해보자 싶었죠.”

“내려놓자”는 마음가짐이 시작이었다. 일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평소 20~30대 여성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아이들이나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 다큐멘터리를 즐겨봤다. KBS2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좋아한다는 그는 아이들이 무심코 하는 동작을 연기에 적용한다며 비결을 털어놨다. “나이를 먹으면서 눈썰미가 생긴 것 같다”는 그는 “연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동안이 고민인 날도 있었고, 슬럼프에 빠져 원치 않는 공백기를 갖기도 했다. 그는 “그때마다 견디기보다 신나게 놀았다”고 담담히 답했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란 마음이었다.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놀았다”며 “그래서 동안인가 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진=‘왕뚜껑’ CF 캡처
◇“웃음과 감동 함께…연기, 오래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단단한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을 골랐다. “다 시기가 있고 때가 있더라”고 답했다. 현재에 충실하다는 그는 “배우는 평생 직업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기력 쌓기도 바쁘다. 다른 것에 신경 쓸 새가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엔 6년째 공개연애 중인 남자친구 김영훈의 공도 있었다.

“남자친구 만나기 전엔 낯가림이 심했어요. 우울함을 이기기 위해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기도 했죠. 남자친구를 만나고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덕분에 유쾌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져서 저도 ‘웃음 욕심’이 생겼죠. 실제 모습이 연기로 나오는 것 같아요.”

김영훈의 친형인 하정우와 부친인 김용건은 누구보다 가까운 ‘연기 선배’였다. 여자 송강호가 됐으면 좋겠다“는 하정우의 조언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웃음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풍부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JTBC ‘맏이’(2013)란 드라마에서 매번 우는 역을 맡았어요. 이후 신파적인 요소가 강한 캐릭터만 주로 제안 받았어요. 두루 경험했으니 이를 잘 섞어서 언젠가 ‘여자 송강호’로 불렸으면 해요. 그런 의미에서 ‘김비서’는 ‘왕뚜껑 소녀’를 벗어나게 해준, 인생작이에요.”

사진=UL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