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혁명과 신비주의에 대한 강박? 이젠 어느 정도 벗었죠”
by양승준 기자
2008.08.04 07:40:11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가수 서태지, 그를 보면 항상 ‘선인장’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외부의 접근에 항상 가시를 곤두세우는 것 같았고, 그의 은둔 생활은 인적이 닿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의 선인장처럼 외로워 보였다. 지난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해 ‘문화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음악은 물론 문화 전반에 한 획을 그은 서태지는 음악적으로는 분명 대중적 아이콘이었지만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는 철저히 비대중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4일 오후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의 인터뷰, 사석에서 만난 서태지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없이 여유롭고 따뜻한 모습이었다. 지난 2004년 이후 5년여 만의 인터뷰에서 서태지는 새 앨범에 대한 음악적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태지는 지난 7집 이후 8집을 작업하기까지의 5년 영의 사적인 생활과 지난 29일 발매한 싱글 ‘모아이’의 앨범 제작 후일담을 가감없이 들려주었다.
“이번 싱글은 제가 느낀 자연과 여행을 콘셉트로 한 앨범이에요. 그래서 새 앨범의 장르도 ‘네이처 파운드’라고 지었죠. 좀 거칠게 번역하자면 ‘자연을 두드리는 소리’ 가 되겠지만 팬들이 이 음반에 담긴 자유스러운 소리에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작명했죠”
8집 싱글의 장르가 ‘네이처 파운드’인 이유에 대해 묻자 서태지가 건넨 말이다. 그는 지난 7월 29일 4년 7개월 여만에 8집 싱글 ‘모아이’를 들고 팬들 앞에 섰다. 6집의 하드코어와 7집의 감성코어를 거쳐 그가 새 싱글에서 표방한 장르가 바로 네이처 파운드. 이 장르명에는 8집 싱글이 짧은 시간 단위로 쪼개져 있는 전자음을 곡들의 베이스로 한 만큼 ‘자연의 소리를 쪼개다’라는 중의적인 뜻도 담겨있다.
장르명은 생소하지만 새 8집 싱글에 대한 음악평론가와 팬들의 반응은 ‘친근하고 대중적이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한 음악평론가는 이번 앨범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향수가 느껴진다고 음반평을 했으며, 어떤 팬은 8집 싱글 중 ‘휴먼 드림’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우리들만의 추억’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태지의 이런 음악적 행보에 일부 사람들은 반색을 표현하는 한편, 음악적 혁명을 버리고 친 대중 음악이라는 안이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멜로디는 대중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음악적 비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작업을 하는데 있어 한번 했던 것들 보다는 새로운 것들을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죠. 이번에는 음반 불황이니 대중적인 음악을 해보자는 기획의도를 갖고 시작한 것은 물론 아니구요. 다만 앨범 콘셉트가 자연과 여행이기에 이를 표현하기 위해 멜로디가 조금 부각됐는데 이런 부분들이 음악팬들에게 대중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좀 더 쉽게 어필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서태지는 지난 솔로 1,2,3집에서 인더스티얼과 하드코어라는 비 대중적인 장르를 시도했지만 탁월한 멜로디 감각으로 버무려 그 낯설음을 순화시켰다. 이번 싱글 또한 서태지는 ‘모아이’와 ‘틱탁’에서 빠른 비트가 특징인 드럼 앤 베이스라는 비주류 테크노 장르를 도입했지만 그만의 감성 멜로디로 음악의 생경함을 덜었다. 이번 싱글이 대중적 음반으로 불리는 이유도 새로운 음악에 대한 도전을 안해서라기 보다는 멜로디가 부각돼 그렇게 들리는 것이라는 게 서태지의 말이다.
이번 새 싱글은 또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위해 서태지가 강원도 등 흉가 등에서 녹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편적으로는 타이틀곡 ‘모아이’의 인트로와 곡 후반부에 동굴 등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담긴 것도 이런 작업을 통해 가능했다.
“이번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어 강원도 흉가에서 일주일간 녹음 작업을 했어요. 녹음 스튜디오는 갑갑한 것도 사실이고 또 획일적인 사운드 밖에 나오지 안잖아요. 그래서 무생물 등 자연만 있는 자연의 공간에서 작업을 하면 새로운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일부러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를 찾아서 간거죠. 멤버들 중에는 이 곳에서 녹음하면서 실제로 귀신을 봤다고 한 친구도 있더군요(웃음).그래서 여기서 과연 연주가 될까라는 의심도 됐죠. 그런데 이곳이 사방이 다 썪은 오래된 나무들 뿐이었는데 소리가 좀 분산됐고 이런 공간감들 때문에 음악에 공간감을 좀 살려준 것 같아요”
서태지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유는 새로운 음악작업 때문 만은 아니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컴백과 활동 중단이라는 가수들의 시즌제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새로운 마케팅 수법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충남 보령 미스터리 서클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UFO 모형을 설치해 대대적인 컴백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팬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미스터리 서클이다.
“미스터리 서클은 기획만 1년, 제작에는 2개월의 시간이 걸렸죠. 그런데 정보가 없어 외국 사이트 보고 연구했어요. 실제로 재현될지 의문이라 밭을 실제로 구매해 시뮬레이션 작업 을 거치기도 했구요. 밤에 작업해서 실패하면 살짝 지우고 그랬죠. 원래 보리밭에서 하려고 했는데 당시가 수확기간이라 갈대밭에서 했고 또 눕혀서 작업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아서 그냥 갈대를 잘라서 서클 작업을 했어요. 원래는 100M 정도 예상했으나 더 크게 넓히고 측량 같은 부문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죠”
그러나 서태지의 이런 컴백 마케팅을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친 티저 광고라는 의견과 서태지의 새 앨범에 대한 불안의식을 이런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불식시키려는 것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스터리 UFO나 서클 등에 관심 많았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이번 앨범의 콘셉트와 맞아 하나의 컴백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거죠. 이런 과정을 사전에 거친 다음 새 음반을 들으면 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서 준비한 것 뿐이에요”
서태지의 이런 프로젝트는 실제로 단순히 미스터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가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새 앨범 활동과 계속 연계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령의 미스터리 서클의 문양은 지난 7월 코엑스에 설치된 UFO 조형물에도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서태지는 이 UFO 조형물의 이미지를 따 컴백 무대 디자인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서태지는 7월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서태지 컴백 스페셜 -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 사전 녹화의 일환인 미니콘서트 무대와 1일 있었던 게릴라 콘서트의 무대를 모두 UFO 조형물의 이미지로 꾸며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태지는 음반 작업 기간에는 철저한 은둔 생활로 유명하다. 이런 은둔 생활로 인해 ‘신비주의’라는 꼬리표를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왔고, 실제로 음반 제작 기간동안에는 외부의 노출을 극도로 삼가며 앨범 작업에만 매진했다. 그렇다면 서태지는 지난 7집 이후 근 5년 여 동안 녹음실에만 틀어박혀 음악작업만 해온 것일까?
“7집 끝내고는 바로 외국으로 떠났죠. 2년 동안 외국에서 머물렀는데 처음 3개월은 음악을 잊고 놀기만 했어요. RC(무선 자동차)하고 여행다니면서요. 그리고 이후에는 새 앨범에 대한 음악 구상을 하고 틀을 잡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 온 나머지 2년 여 동안은 음악 작업에만 매진했구요. 1년 정도 거의 감금 생활을 하다시피 멤버 탑과 김석중과 편곡 등 녹음 작업을 거쳤죠. 1년 간은 진짜 잠자고 녹음하고의 연속이었어요. 탑은 저번 앨범에도 저랑 작업을 같이 해서 이런 생활에 대해 걱정을 별로 안했고, 새 멤버 김석중은 좀 불안했는데 저 같은 오타쿠 기질이 다분해 적응을 잘하더라구요”
서태지는 이런 고립된 음악작업이 전혀 외롭지 않은 듯 않은 듯 보였다. 또 이런 작업스타일로 외부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신비주의 가수라고 부르지만 자신은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일 뿐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안나오고 작업만 하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전 사실 이 방법이 편해요.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시나위 시절 음악 작업 할 때도 6~7개월 동안 집 문을 한 번도 안 연적이 있었죠. 시나위 시절에는 특히 머리가 길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제 머리를 보고 놀라고 이상하게 보는 것이 불편하고 쑥스러워 그랬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하면서 더 심해진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이젠 이런 것들이 익숙하고 습관이 돼버렸어요. 원래 밖에서 여럿이 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뭐 만들면서 노는 것 좋아하는 오타쿠 기질이 있거든요. 또 정 갑갑하거나 할 때는 외국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이 있으니 여기서 바람을 쐬기도 하구요”
그렇다면 이번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불안감은 없었을까? 음악팬들은 항상 서태지의 음악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했고, 서태지는 이 요구에 새로운 음악으로 응답해왔기에 가요계의 아이콘으로 10년 넘게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태지는 이런 새로운 음악에 대한 창작통 때문에 급기야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4집을 발매한 후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으로 인해 은퇴를 결심했다’고 선언하며 한 동안 잠적한 바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정말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죠. 앨범 제작 기간이 워낙 짧았던 탓도 있구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도 ‘아 이제 끝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창작에 대한 강박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기복을 나름 잘 콘트롤 하는 여유도 생겼죠. 앨범 작업하면서 힘들다가도 어느 순간 좋은 음악 나오면 이제 됐다는 만족감을 갖기도 하고 자신감도 얻고요”
서태지는 인터뷰 도중 동안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런 스트레스와 강박에 대하 해방이 그 이유인 것 같다는 말로 이전과는 다른 한 층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에는 때려 치워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나름 행복하게 음악작업을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새 싱글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앞두고 있는 서태지. 그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될까? 서태지는 8집 첫 싱글 ‘모아이’외에도 한 장의 싱글과 앨범을 추후 더 발매할 예정이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죽이고 싶지 않은 곡이 너무 많아 2장의 싱글과 한 장의 정규앨범을 제작하겠다는 것이 서태지의 말이다. 그는 이번 음악을 더 많이 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예전과는 달리 여러 이색 공연을 마련했고 활동기간을 좀 더 늘일 생긱이다.
서태지는 오는 8월 15일 ETPFEST와 올 가을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영국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앞두고 있다.
“지금 오케스트라와 편곡 작업을 진행중이에요. 미국 록밴드 메탈리카도 오케스트라와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제 음악은 다소 버라이어티한 편이라 곡 중 감성적인 곡들의 분위기를 현악 세션으로 잘 살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 연말에는 전국투어를 생각중이고 방송도 가능하면 출연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