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바꾸고 해외 선공개… 드라마 '불황 뚫기' 총력
by김가영 기자
2024.03.28 06:00:00
'약한영웅', 웨이브→넷플릭스 플랫폼 변경
'내 남자는…', 아마존 프라임서 먼저 공개
"찍어 놓고 편성 받지 못한 작품 수십편"
"대안 없어… 각자 방법으로 생존 궁리"
[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드라마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 시즌을 제작하며 다른 플랫폼과 계약을 체결하는가 하면, 국내 드라마를 해외에서 선공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제작사 관계자 A씨는 “현재 드라마 업계에는 편성을 받지 못한 작품이 수십 편에 달한다”며 “찍어놓고 공개가 못 되는 드라마들이 많은데 언제 편성될지도 모르는 만큼 각자의 방법으로 살 궁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웨이브의 효자작인 ‘약한영웅’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제작한다. ‘약한영웅’은 상위 1% 모범생 연시은(박지훈 분)이 처음으로 친구가 된 수호(최현욱 분), 범석(홍경 분)과 함께 수많은 폭력에 맞서나가는 과정을 그린 액션 성장 드라마다. 학교 안팎의 폭력을 입체적으로 다루며 입소문을 탔고 2023 아시아콘텐츠어워즈&글로벌OTT어워즈에서 베스트 OTT 오리지널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흥행과 작품성을 잡은 만큼 시즌2 제작에 대한 관심도 높았던 상황. 그러나 웨이브와 논의가 길어지면서 시즌2 제작에 차질이 생겼다. 웨이브는 2022년 121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제작비 규모가 큰 드라마와 영화보다 예능, 시사교양 부문에 집중해 왔다. 또 티빙과의 합병을 준비 중인 만큼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시즌2 제작은 부담스러웠을 터. 결국 ‘약한영웅’ 시즌2는 자본력이 뒷받침된 넷플릭스와 제작하기로 했다. 웨이브 입장에서는 흥행이 보장된 IP(지식재산권)를 내주기 쉽지 않았지만, 작품을 위해 한발 물러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웨이브의 제작 축소가 보여주듯 현재 국내 드라마 제작 시장의 형편은 좋지 않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OTT가 국내에 자리 잡으며 K콘텐츠 열풍의 후광을 입은 것도 잠시, 제작비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TV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방송사에 집행됐던 광고비도 온라인 등으로 분산돼 관련 업계의 어려움이 잇따르고 있다.
제작비는 커지지만 그에 따른 수익이 따라주지 않자 각 플랫폼과 방송사에서는 드라마 제작·편성을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드라마 호황기에 이미 사전제작된 드라마들은 갈 곳을 잃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2022년 OTT와 방송사를 통해 공개된 작품은 141편이었으나 2023년은 123편, 2024년 100~110편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점차 편성을 받는 작품이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이 해외 선공개다. HB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내 남자는 큐피드’는 자신이 쏜 큐피드 화살에 맞아 사랑에 빠져버린 요정과 그 사랑에 얽혀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드라마로 배우 장동윤, 나나가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국내 편성을 받지 못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지난해 12월 1일 선공개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 편성은 받지 못한 상태다.
이같은 경우도 극히 드문, 운이 좋은 사례라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A씨는 “로컬 OTT도 국내 편성된 작품 위주로 계약하려고 한다”며 “검증된 작품이어야 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이유로 최근 방송사에 제작비를 받지 않고 무료로 드라마를 편성하겠다고 나선 제작사도 있다”고 업계의 심각한 상황을 짚었다.
현재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서 파악한 미편성 드라마는 27편이다. 드라마 시장의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해당 드라마들이 편성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미 제작 후 시간이 상당히 흐른 만큼 현재 방송가 트렌드와 동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서다.
제작사 관계자 B씨는 “다들 편성을 위해 고민하지만 뚜렷한 대안은 없다”며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개봉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방송사·플랫폼이 한정돼 있어 추후 공개가 불가능하다. OTT를 통해 공개하더라도 소위 말해 ‘땡처리’ 수준이라 적자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제작사 관계자 C씨는 “드라마 시장이 어려워졌다는 것도 문제지만 K콘텐츠 열풍을 보고 분별력 없이 작품을 제작한 것이 문제”라며 “시장이 안정화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제작할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