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도 채우지 못한 클린스만호…여전히 해결할 문제는 산더미
by허윤수 기자
2024.02.19 00:00:00
축구협회, 클린스만 감독 경질... 부임 353일 만에 결별
'책임론' 정몽규 회장, 선임 과정 해명하며 사퇴 의사 밝히지 않아
대행 체제·정식 감독 체제 두 가지 방안...선수단과 신뢰 회복도 필요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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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허윤수 기자] “대한축구협회와 서로 도우며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
지난해 3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밝힌 각오는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클린스만호가 출항 353일 만에 침몰했다.
지난 1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졸전이 결정타였다. 64년 만에 우승을 노렸으나 부진한 경기력 속에 4강에서 탈락했다.
|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차두리 코치, 클린스만 감독, 헤어초크 수석코치.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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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호는 대회 내내 무색무취한 전술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역대급 선수단이라는 평가에도 단 한 경기도 압도하지 못했다. 선수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모습으로 ‘해줘 축구’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여기에 선수단 내 충돌 사실까지 밝혀지며 관리조차 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 경쟁력을 끌어내는 경기 운영, 선수 관리, 근무 태도 등 우리가 기대하는 지도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기로 했다”고 경질 배경을 밝혔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본선까지 이끌기로 했던 클린스만 감독은 3년 5개월의 계약 기간 중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설이 돌 때부터 언론과 축구 팬은 기대보다 우려를 드러냈다. 독일 대표팀을 이끌고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으나 당시 수석코치였던 요하임 뢰프 감독이 전적으로 전술을 도맡았다는 게 알려졌다. 실제 뢰프 감독과 결별한 뒤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기에 재택근무 논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돌발 사임 등 여러 문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강행했고 결과적으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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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을 잃은 한국 축구는 다시 새 사령탑을 찾아야 한다. 월드컵 본선까지 약 2년 4개월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투명한 선임 과정이 필요하다.
클린스만 선임 과정에서 미흡함이 지적됐던 협회는 전력강화위원 개편 계획 말고는 아직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 회장은 오해가 있다며 해명했다. 그는 “파울루 벤투 선임과 같은 과정을 거쳐 진행했다”라며 61명의 후보자를 선정해 추렸고 면접을 통해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해 새 사령탑 선임 작업을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책임론에 대해 고개를 숙이면서도 사퇴 요구에 대해선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는 “종합적인 책임은 협회와 저에게 있다”면서도 “원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본 뒤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당장 내달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치른다. 태국을 상대로 21일엔 홈, 26일엔 원정 경기가 예정돼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고려하면 쉽게 승리를 점칠 수 없다.
자연스레 감독 선임 시나리오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3월 월드컵 예선을 대행 체제로 치른 뒤 정식 감독을 찾는 방안과 바로 정식 감독 체제로 출범하는 방안이다. 첫 번째 방법의 경우 태국전까지 시간이 촉박하기에 국내파 감독이 임시 지휘봉을 잡을 확률이 높다. 현재 올림픽 대표팀을 이끄는 황선홍 감독을 비롯해 홍명보 울산HD 감독, 김기동 FC서울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정식 감독에도 국내파 지도자가 적임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으로 인해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커졌으나 신중해야 할 문제다. 클린스만 감독의 문제점은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선임한 건 협회와 정 회장이었다. 그들의 책임이지 향후 외국인 지도자를 배제한다는 결론이 나와선 곤란하다.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감독 선임 절차가 필요하다.
|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에서 0-2로 패배한 대표팀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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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과 신뢰 회복도 급선무다. 협회는 대표팀 내 불화설이 보도됐을 때 이를 빠르게 인정했다. 이마저도 명확한 설명이 없었기에 추측성 이야기가 퍼졌다.
지난 15일 전력강화위원회 브리핑에 나선 황보관 기술본부장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발생했기에 빠르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라면서도 “팩트는 확인됐으나 세세한 부분까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사실 관계 확인이 100% 이뤄지지 않았으나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선수단 내부에서 해결됐어야 할 일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협회는 선수단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비판의 화살이 선수단으로 향했고 불화설에 이름이 오르내린 선수들은 SNS에 악플 세례를 받고 있다. 협회를 향한 선수단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 회장은 “향후 코치진 구성이나 선수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유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너무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상처를 악화하는 일이기에 언론과 팬 모두 도와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의 환희는 1년 만에 추락했다. 대표팀을 향한 찬사도 비판으로 바뀌었다. 전 세계가 한국 축구의 민낯을 목격했다. 변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