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3.0 시대]①국적·언어 초월한 K팝 아이돌…팝 본고장 영미권 정조준
by김현식 기자
2023.12.21 06:00:00
위기론 속 '초국적 아이돌' 급부상
하이브 '캣츠아이' JYP 'VCHA' 출격
SM은 英기획사와 보이그룹 론칭 계약
中·日 현지화 성공 업고 영미권 공략
K팝 소비층 아시아권 쏠려 성장 한계
'34조 규모' 美시장 본격 공략 나설 때
2024년 초국적 그룹 다양화 원...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방탄소년단(BTS)의 부재로 위기론에 마주한 K팝이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해 팝의 본고장을 본격 공략한다. 이른바 3세대 K팝 세계화 모델인 ‘K팝 3.0’을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도 가동한다. K팝은 한국인 멤버들로만 팀을 구성하던 ‘K팝 1.0’을 거쳐 해외 국적 멤버를 팀에 포함해 현지화 전략을 펴는 ‘K팝 2.0’으로 진화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K팝 3.0’에 접어들어서는 한발 더 나아가 해외 국적 멤버들이 중심이 된 초국적 그룹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일본과 중국에서 성공 사례를 연이어 만들었다. K팝이 ‘K팝 3.0’ 모델로 주류 음악 시장인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공략까지 성공하며 외연 확장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최근 몇 년 사이 K팝은 매우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특히 음반 분야에서의 선전이 눈에 띈다. 20일 한국음악콘텐츠협회에 따르면 올해 1~11월 음반 누적 판매량(톱400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4150만장 가량 많은 약 1억 1600만장으로 집계됐다. 연간 음반 누적 판매량이 1억장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출액도 최고치를 찍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음반 수출액은 2억7024만6000달러(약 3524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5.3% 증가했다.
이 가운데 일각에서는 ‘K팝 위기론’을 제기한다. K팝 성장을 견인하던 ‘슈퍼 IP’들의 폭발적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어서다. 여전히 마니아층만 소비하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강해 ‘MD 상품화’된 음반 분야에서만 강세를 보이고 음원 스트리밍 분야에서의 존재감과 확장세는 미미하다는 점도 위기론 제기의 이유다. 실제로 최근 인기 그룹들의 음반 판매량 증가율은 한풀 꺾였고, 방탄소년단(솔로곡 포함) 이후로 빌보드 송 차트 핫100 톱10 진입에 성공한 후발 주자조차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올 초 열린 관훈 포럼에서 “미국 등 주류 시장에서 K팝 성장률이 최근 둔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그는 “글로벌 음반 시장에서 국내에 거점을 두고 있는 K팝 회사들의 매출 점유율은 아직 2% 미만”이라면서 K팝을 ‘골리앗’들 사이에 있는 ‘다윗’에 비유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K팝 대표 기획사들은 글로벌 음악 기업과 파트너십(MOU)을 맺고 팝 시장 현지화를 목표로 한 초국적 그룹을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팝 주류 시장에서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음반 구매가 아닌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비교적 가볍게 소비하는 현지 ‘라이트 팬’들과의 접점을 늘리려는 시도로도 풀이된다.
하이브와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는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발걸음을 뗐다. 하이브는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산하 레이블 게펜 레코드와 합작해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를 통해 걸그룹 캣츠아이 멤버 6명을 선발했다. 지원자가 12만명이나 몰린 가운데 멤버로 선발된 한국인은 단 한 명뿐. 미국, 필리핀 등 영미권 출신 멤버들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JYP는 UMG 산하의 또 다른 레이블 리퍼블릭 레코드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6인조 걸그룹 VCHA(비춰)를 제작했다. 멤버 전원이 영미권(한국·미국 이중국적자 1명 포함) 출신이다. VCHA는 지난 9월 프리 데뷔 싱글을 냈고, 내년 1월 중 정식 데뷔한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미국과 함께 양대 팝 시장으로 통하는 영국에 본사를 둔 엔터테인먼트 기업 문앤백(M&B)과 현지 기반 보이그룹 론칭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문앤백이 영국에서 멤버들을 직접 선발하고, SM은 음악, 뮤직비디오, 안무를 비롯한 K팝 제작 시스템 노하우를 제공하는 형태로 내년 하반기쯤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의 글로벌 인지도는 상승한 반면 음악적인 신선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요가 예전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북미 혹은 유럽 출신 멤버를 끌어안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당장은 신선도를 높이는 위기 탈출의 한 방식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캣츠아이 멤버를 선발한 ‘드림아카데미’ 참가자들(사진=하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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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기획사들의 의도는 팝의 본고장인 영미권을 정조준하겠다는 것이다. 성공가능성은 충분하다.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연이어 성공 사례가 나온 것이 좋은 예다. JYP의 보이스토리(중국·2018), 니쥬(일본·2020), SM의 웨이션브이(중국·2019), 하이브의 앤팀(일본·2022) 등이 ‘K팝 3.0’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K팝은 주 소비층이 아시아권에 쏠려 있다는 점이 고민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해외에서 발생한 음악 저작권 사용료 총 징수액 220억원 중 146억원이 아시아에서 발생했고, 아메리카와 유럽이 각각 32억원과 36억원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 더 큰 시장에 뿌리를 내려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미국은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입지를 키우기 위해 반드시 공략해야 할 관문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PWC가 지난달 발표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음악 시장 규모는 262억 9800만 달러(약 34조 2925억)로 압도적인 전 세계 1위였다. 2위는 68억7200만달러(약 8조 9610억원) 규모인 일본. 한국은 12억8500만 달러(약 1조 6756억)로 8위에 머물렀다.
내년이 초국적 그룹 다양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DR뮤직의 블랙스완(미국, 벨기에, 인도 등), MLD엔터테인먼트의 호라이즌(필리핀) 등 이미 중소기획사 소속 그룹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 중인 가운데 대형기획사들이 론칭하는 그룹들까지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내는 해이기 때문이다.
곽영호 한터글로벌 대표는 “국내 K팝 신규 팬덤 증가율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전 세계 30여개국에서 유의미한 지표가 나올 정도로 K팝 소비국은 늘어났다”며 “앞으로 이전보다 다양한 국가를 겨냥한 초국적 그룹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한 경쟁 시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팝 제작 노하우를 전수받은 해외 제작자가 론칭하는 ‘K팝 4.0’ 모델 그룹들과도 경쟁하는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마치 태권도 종목 처럼 국내 기획사 출신보다 뛰어난 실력과 인기를 자랑하는 해외 기획사 출신 K팝 그룹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외형적 변화뿐만 아니라 내실을 다지며 좋은 곡을 만들어 내는 일에도 계속해서 힘을 쏟아야 K팝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