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제 도입, 첫 유료관중' 한국 럭비, 불모지서 희망의 싹 틔웠다
by이석무 기자
2022.04.15 00:12:59
| 한국전력 주장 김광민이 2022 OK코리아 슈퍼럭비리그 1차 대회 현대글로비스와의 경기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대한럭비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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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OK코리아 슈퍼럭비리그 1차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전력 선수들이 최윤 대한럭비협회 회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럭비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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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OK코리아 슈퍼럭비리그 경기. 한국전력공사와 현대글로비스가 스크럼을 짜고 있다. 사진=대학럭비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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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럭비가 이렇게 재밌는 운동인 줄 몰랐어요.”
‘불모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던 한국 럭비에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럭비는 영연방 국가를 중심으로 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에선 일본, 홍콩 등에서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한국 럭비 역사도 100년에 이른다. 1923년 11월 축구 경기 도중에 번외로 열린 럭비 구락부 대 중앙고보, 럭비 구락부 대 보성고보전이 한국 럭비의 시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럭비는 무관심 스포츠였다. 럭비인들은 그동안 스스로를 ‘비인기 종목’이 아닌 ‘비인지 종목’이라고 불렀다. 인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 럭비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랬던 한국 럭비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외국의 럭비강국처럼 우리나라도 럭비 리그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대한럭비협회는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9일까지 ‘2022 OK코리아 슈퍼럭비리그(15인제) 1차 대회’를 개최했다. 1차 대회 실업부 우승 트로피는 3전 전승을 기록한 한국전력에 돌아갔다.
이 대회는 한국 럭비의 리그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다. 그전까지 선수들은 일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3~4경기를 치러야 했다. 격렬한 종목 특성상 당연히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다쳐도 치료할 시간이 없었다.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김동환 한국전력 감독은 “과거 18~19명으로 전국체전을 치르던 시절에는 일주일 동안 예선부터 결승까지 치러야 했다”며 “부상 때문에 선수 정원을 채우지 못해 기권한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리그제가 되면서 그런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 팀과 선수들은 4개월 동안 진행될 리그 기간에 매주 1경기씩만 소화한다. 부상을 당해도 회복할 여유가 생겼다. 경기를 대비해 전술, 전략을 세심하게 준비할 수도 있게 됐다.
찰스 로우 럭비 국가대표팀 감독은 리그제 운영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는 “주말 리그 경기를 기획한 것은 어마어마하게 잘 한 것이다”며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관중도 끌어모을 수 있다. 주말 리그는 한국 럭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 주장 김광민은 “그전에는 한 게임 끝나면 하루 쉬고 다음 경기에 나서야 해 회복이 어려웠다”며 “일주일만 쉬더라도 회복이 충분히 된다는 점에서 리그제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리그제와 더불어 유료 관중 입장도 새로운 변화다. 그전까지는 럭비 경기에 유료 티켓을 판매해본 적이 없었다. 일반 관중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한럭비협회는 리그 1차 대회 마지막 날인 9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전용구장에서 유료티켓을 1만원에 판매했다. 총 720장의 티켓이 팔렸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같은 인기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럭비로선 새로운 역사의 순간이었다.
현대글로비스 선수 송민수는 “오늘처럼 관중이 많았던 적은 처음이다”며 “관중의 함성에 더 힘이 났고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대한럭비협회는 처음으로 리그제를 시도하면서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심판에게 마이크를 채운 것은 기발했다. 심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선수는 물론 관중에게도 생생히 전달됐다. 수준 높은 중계방송도 함께 진행됐다.
이 같은 럭비의 대변신은 최윤 대한럭비협회 회장의 열정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일동포인 최윤 회장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아마추어 럭비 선수로 활약했다. 선수로선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럭비를 통해 힘든 유년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럭비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최윤 회장은 대회 기간 내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협회 수장임에도 마치 진행요원처럼 직접 뛰어다니면서 현장 상황을 일일이 체크했다.
최윤 회장은 “럭비는 15명이 자기 역할을 하는 스포츠로 우리 인생이나 사회 시스템과 비슷하다. 성취감과 리더십, 희생정신을 느낄 수 있다. 또 럭비에는 과감한 도전을 함께 한 친구들끼리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고 매력을 설명했다. 이어 “럭비가 비인지스포츠에서 인지스포츠로, 더 나아가 인기스포츠로 가려면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빛날 수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도 럭비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