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D.P.' 제작 변승민 대표 "콘텐츠=요리…조합·파트너 중요" [...

by김보영 기자
2021.12.17 06:00:00

"한국이 거친 정치·사회적 배경, 보편적 요소 자극"
"원작 IP 못지 않게 이를 만드는 구성원 조합도 중요해"
"넷플릭스는 잘 들어주는 곳…약속으로 맺는 실행력"
"창작자 역량이 전부 아냐…OTT, 투자사와 균형 중요"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가 서울 강남구 스튜디오 사옥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감독 연상호)과 ‘D.P.’(감독 한준희)를 제작해 올 하반기 잇단 글로벌 흥행을 이끈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는 K콘텐츠 성공의 핵심 비결을 이 같이 밝혔다.

2021년은 가요, 드라마, 영화 등 눈부신 성과로 한국 대중문화계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 해였다.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는 전신인 레진스튜디오 시절이던 지난해부터 드라마인 tvN ‘방법’, 카카오TV ‘아만자’와 영화 ‘초미의 관심사’ 등 다양한 플랫폼에 콘텐츠를 다수 선보이며 일찍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넷플릭스 ‘D.P.’, ‘지옥’이 잇단 흥행을 거뒀고, 이젠 국내를 넘어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제작사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지옥’은 24시간 만에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전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1위(플릭스패트롤 집계 기준)를 휩쓸었다. 아시아 작품 중 유일하게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해외 드라마 톱10에 오른 ‘D.P.’는 성원에 힘입어 최근 시즌2 제작을 확정했다.

사명 변경을 시작으로 JTBC스튜디오와 인수합병, 넷플릭스 흥행까지 올해는 특히 변 대표에게 변화가 많았다. 비상장 기업이지만, ‘지옥’이 글로벌 화제를 일으켜 관련주가 주목을 받자 주식 시장에서도 뜨거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변 대표는 최근 서울 강남구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의 특성이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출발점이자 교두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올 한해의 소회를 밝혔다. 이로 말미암아 K-콘텐츠가 전통 산업구조의 틀을 깨고 새로운 형태를 창조시킬 초석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지나치게 과열되거나 악용돼 소비된다면, 그만큼 피해를 입고 혼란스러워지는 위험이 생길 수도 있을 듯하다”고 우려도 덧붙였다.

올해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성공시킨 작품들은 웹툰 등 원작 IP(지적재산)가 있는 작품을 영상으로 리메이크한 2차 콘텐츠란 공통점이 있다. 2차 콘텐츠는 원작의 인기가 이미 스토리의 작품성을 증명하고, 원작 독자들의 관심만으로도 화제성이 담보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원작의 매력과 새로운 매력 어느 한 쪽도 살리지 못해 시청자가 등 돌리는 실패 사례도 많다. ‘지옥’, ‘D.P.’는 어떤 점이 달랐을까. 변 대표는 ‘조합의 방식을 집중적으로 고민한 결과’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콘텐츠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똑같다고 정의했다. 아무리 똑같은 재료를 써도 누가 만들고, 어떤 조리법을 활용했는지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달라지듯, 콘텐츠 역시 이를 만드는 구성원의 조합에서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변 대표는 “주로 오랜 기간 지켜본 창작자들과 주로 작업했다. 오래 봐야 개개인의 강점과 적재적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두 차례 호흡한 넷플릭스와의 협업 소감과 함께 K콘텐츠의 흥행에 OTT 플랫폼의 특성이 안겨준 성과와 의미도 되짚었다. 변 대표는 넷플릭스를 “많이 들어주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또 “창작자의 요구, 제작자가 필요로 여기는 지점들에 항상 귀 기울이기 때문에 양측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며 “절대적 자유를 준다고 볼 순 없지만, 약속 안에서 제작진이 최대한의 기량을 낼 수 있게 실행을 돕는 집단”이라고 부연했다.



OTT가 콘텐츠의 성과를 가늠하던 기존의 척도 및 기준을 변화시켰다고도 강조했다. TV 시청률, 극장 관객 수로만 정의되던 성과지표의 범위를 넓혔다는 해석이다. 변 대표는 “과거에는 기획·제작 단계에서부터 관객 수, 시청률 등 흥행수익을 항상 신경 써야 했다. 반면 OTT는 처음부터 일정 수준의 계약금을 받고 작품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OTT에서의 성과는 수치 대신 시청자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성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돈의 논리에 상대적으로 덜 구애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오히려 제작자와 창작자가 작품의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세계를 사로잡을 K콘텐츠가 앞으로도 계속 나오려면 창작자 개인, 개별 제작사의 역량을 넘어 어떤 곳과 파트너십을 맺는지도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 대표는 “결국 창작자는 다음 작품을 선보일 기회와 그 작품을 온전히 자기 색채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가장 바란다”며 “그러려면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성과로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높은 콘텐츠 안목으로 창작자의 결과물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발전과 성장을 돕는 파트너사를 만나는 것도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려면 창작자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플랫폼과 극장, 투자 배급사들이 함께 균형과 상생을 이루는 구조가 확보돼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한국의 콘텐츠와 창작자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만큼 국내 OTT, 투자배급사들도 영미권, 타 국가의 유명 창작자들을 만났을 때 유사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갖춰야 더욱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모델이 도출될 겁니다.”

1982년 출생한 그는 영화 투자배급사 NEW에서 영화 ‘초능력자’, ‘헬로우고스트’, ‘시’ 배급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영화팀으로 자리를 옮겨 ‘7번방의 선물’, ‘피에타’, ‘신세계’, ‘스물’ 등 다수의 히트작 투자 책임을 맡으면서 업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2016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한국영화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밀정’, ‘싱글라이더’, ‘마녀’, ‘인랑’ 등의 투자를 총괄했으며, 2018년 11월 레진스튜디오를 창업했고, 지난 1월 레진엔터테인먼트와 지분 관계를 청산한 뒤 새로운 사명인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대표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