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허점 노린 바이럴 마케팅, 음원 순위 교란 주범 오명
by김윤지 기자
2018.04.16 06:02:02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 음악이 아닌 마케팅의 승리다. 바이럴 마케팅이 일종의 바이러스가 돼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무명 가수 닐로의 노래 ‘지나오다’는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4일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곡이다. 가수 인지도, 음악 완성도, 특별한 팬덤 등 눈에 띄는 특징이 없지만 1위에 올랐다. 기현상이다. 소속사는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이메일이나 다른 전파 가능한 매체를 통해 어떤 기업이나 서비스를 알리는 마케팅 기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일부 가요계 관계자들은 “음원 사이트의 허점을 노린 불공정한 ‘어뷰징(abusing·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 바이럴’”이라며 “음원 사이트가 선곡하는 플레이 리스트와 실시간 차트가 어떻게 시장을 왜곡시키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론을 왜곡시키는 매크로 댓글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몸살을 앓는 현상과 닮았다는 지적이다.
시작은 지난 12일 새벽 1시부터 ‘지나오다’라는 곡이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면서부터다. 이용자가 저조한 새벽 시간대에 스트리밍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인 워너원, 트와이스, 엑소 첸백시, 위너까지 제쳤다. 이 노래는 바이럴 마케팅에 특화된 리메즈엔터테인먼트(이하 리메즈)와 지난 2월 전속계약을 맺은 가수 닐로의 노래였다. 갑자기 1위에 오른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13일에는 Mnet ‘고등래퍼2’ 신규 음원이 쏟아져 나와 일부 사이트에서 1위에 올랐지만 멜론에서 닐로의 수성을 깨지 못했다. 15일 오후 6시 기준 음원사이트 멜론 실시간 차트 1위는 여전히 닐로의 ‘지나오다’다.
리메즈의 입장은 간단하다. 리메즈 측은 “음원 사재기 등 부정행위는 절대 없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15일 발표한 공식입장 역시 “모바일로 많은 음악을 접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SNS를 대중과 뮤지션의 소통의 창구로 사용하고 있고, 뮤지션의 음악을 홍보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직접 기획·제작해 많은 사람들에게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SNS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광고 툴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메즈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다. SNS 페이지 운영 대행 및 콘텐츠 제작 컨설팅 업무를 한다. ‘OO 들려주는 음악’ 등 페이스북 페이지가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음원을 집중 노출시키고 ‘역주행’을 유도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간에 차트에 진입하면 ‘역주행한 노래’가 다시 홍보 문구가 된다. 궁금증 때문에 대중은 해당 음원을 찾게 되고, 이는 라디오, 방송 노출로 이어진다. 또 플레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 자연스럽게 순위가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부자연스러운 ‘역주행’이란 점이다. ‘역주행’은 뒤늦게 발견된 옥석에 붙여지는 수식어다. ‘듣는 힘’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빛을 보는 노래들이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예열된 후 음원 차트로 이어진다. ‘지나오다’는 이와 같은 흐름을 찾기 힘들다. 리메즈가 보유한 혹은 유사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주로 노출됐다. 멜론 외 엠넷닷컴, 벅스, 올레뮤직, 소리바다, 지니, 네이버 뮤직, 몽키3 등 국내 8개 음원차트 내 순위 편차가 심했던 것도 한 몫한다.
닐로와 같은 소속사인 그룹 장덕철, 포티(40)도 공교롭게 한밤중에 차트 순위기 치솟았다. 리메즈의 주장처럼 가공의 아이디로 음원을 특정 시간대에 구매하는 음원 사재기는 아니다. 그러나 음원 사이트 이용자들은 사재기만 아닐뿐 악영향을 미치는 불공정 마케팅이라고 반발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문체부가 닐로·장덕철의 음원 사재기와 순위 변동 사건을 수사해달라’는 청원을 찾을 수 있다. 15일 오후 5시 기준 4000명 이상 동의했다.
음원 사이트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현재 음원 사이트는 음원을 제공하는 플랫폼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닐로는 소속사의 표현대로 ‘음악을 알리는’ 마케팅 방법에 힘입어 ‘1위 가수’가 됐다. 거액의 음원 수입을 챙기는 것은 물론 인지도도 올랐다. 일부 음원 사이트는 팬덤의 ‘스밍’(스트리밍의 줄임말) 경쟁을 사실상 조장했다는 비판을 듣는다. ‘지붕킥’, ‘올킬’, ‘줄세우기’ 등도 팬덤 ‘스밍’의 결과다. 음원 사이트가 닐로의 이상한 ‘역주행’에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허점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멜론은 이번 논란에 대해 “비정상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제 살 깎아먹기인 탓에 눈을 감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상위 순위 100곡을 일방적으로 노출하는 ‘실시간 차트 100’ 등과 같은 플레이 리스트를 이참에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바이럴 마케팅의 기이한 결과로 진정성 있는 ‘역주행’ 노래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도 있다. 가요계에선 방송이나 대형 자본 없이 좋은 음악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초창기엔 컸다. 닐로 논란으로 SNS을 통해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어뷰징 바이럴이 가능하다는 게 증명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다. 이번 논란의 해법도 쉽지 않다. 어뷰징 마케팅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있지만, 이번처럼 특이한 사례는 파악조차 쉽지 않다.
이동수 마들렌 뮤직 대표는 13일 SNS에 “홍보 채널이 절실한 인디뮤지션과 중소기획사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비슷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써가며 회사 코스프레를 하더니 여기저기 투자까지 받으며 점점 세를 키워나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 한국음악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갖춘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차우진 음악 평론가는 무엇보다 ‘지나오다’의 완성도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SNS에 “음악에 대한 고민 보다 이런 조작으로 이득을 보는 일은 소비자와 시장을 우습게 만든다”면서 “마케팅은 형편없는 걸 대단하게 포장하는 노하우가 아니라 콘텐츠의 질과 연관돼야 할 도구다. 때문에 이번 사태는 진지한 전문가들에 대한 모욕이자 시장 교란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