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빛난 `공남`, `젊은 사극`의 품격

by양승준 기자
2011.10.07 07:18:45

▲ KBS 2TV `공주의 남자` 박시후와 문채원
[이데일리 스타in 양승준 기자] 최강희와 지성도 결국 잡지 못했다. 방송 전 문채원 박시후 등 주연 배우들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KBS 2TV `공주의 남자`가 6일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공주의 남자`는 이날 24.9%(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란 자체최시청률을 기록, 유종의 미를 거뒀다. `공주의 남자`는 지난 8월31일 13회부터 24회까지 줄곧 시청률 20%를 웃돌며 승승장구했다. 지난 7월28일 SBS `시티헌터`가 끝난 후에는 단 한 번도 `보스를 지켜라`에 수목극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KBS에 따르면 `공주의 남자` 평균 시청률은 올해 지상파 방송3사에서 방송된 평일 미니시리즈 가운데 가장 높았다. `공주의 남자` 24회 평균 시청률은 19.3%. 지난 3월 막을 내린 SBS `싸인`이 평균 시청률 18.7%로 1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이 기록도 넘어섰다.
▲ `공주의 남자`

`공주의 남자`의 흥행에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 컸다. 핏빛 정치 암투와 애절한 로맨스를 절묘하게 버무려 극의 흥미를 극대화했다는 평이다. 사극의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권력 다툼에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섞어 젊은 시청자도 드라마로 끌어들였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조합해 상상력을 자극한 것도 주요했다. `공주의 남자`는 계유정난이란 역사적 사실에 `금계필담`이란 야사를 혼합, 진실과 허구 사이의 묘한 줄타기를 해 그 경계를 오히려 무너뜨렸다.

갈등 구도가 명확했던 것도 장점이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극 초반 수양(김영철 분)과 종서(이순재 분)가, 후반에는 수양과 승유(박시후 분)의 정치적 대립이 팽팽하게 이어져 극적 긴장감을 살렸다. 승유 세령(문채원 분) 신면(송종호 분)의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도 흥미진진했다. 문채원도 "세대별로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가 다양해 극을 더 촘촘히 메워주는 것 같다"고 했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었던 것도 드라마의 흡입력을 높이는데 주요했다. 세령 승유 경혜(홍수현 분) 정종(이민우 분)은 드라마 중반 계유정난 이후 캐릭터가 급변해 반전의 재미도 줬다. 문채원만 해도 `3단 변신`을 했다. 문채원은 극 초반 발랄한 모습으로 소녀 같은 매력을 뽐내더니 계유정난 이후 승유와 헤어지면서는 슬픔에 젖어 무너져내리는 연약한 여인이 됐다. 그리고 다시 승유를 만나서는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철의 여인`으로 변했다. 긴박한 사건에 맞물려 생동감 있게 변화하는 캐릭터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 `공주의 남자` 홍수현과 이민우

재료가 좋아도 요리사의 능력이 없다면 제맛이 나지 않는 법. 연기자들은 호연으로 `공주의 남자`를 빛냈다. 특히 `사극 명장`들의 열연은 눈부셨다. 이순재와 김영철 등 중견 연기자들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데뷔 30년간 사극 인생을 살아온 이민우의 웅숭깊은 연기에 시청자는 울고 웃었다. 격정만이 감동을 낳지는 않는 법. 이민우와 홍수현은 절제되면서도 애틋한 커플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이민우는 "홍수현이 아닌 경혜공주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며 후배의 연기를 높이 사기도 했다.



`공주의 남자`의 발견은 바로 문채원이었다. 그는 극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안정적인 연기로 극의 윤활유가 됐다. 박시후의 연기도 무난했다.
▲ `공주의 남자`
`공주의 남자`는 새로운 시도도 돋보였다. 남성 중심적인 사극의 작법도 깼다. `공주의 남자`는 실제 트렌스젠더도 나왔다. 제작진은 최한빛을 극중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이나 영혼은 여자인 캐릭터로 출연시켰다. 기존 사극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접근이다. 평등주의적 시선도 극에 묻어났다. "공주든 기녀든 사람이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달라." 공주가 된 세령이 기녀들에게 한 말이다. 신분과 위계를 거부하는 혁명적 시선이다.

`공주의 남자` 대사는 정통사극과 비교해 감성적이었다. 승유가 `가끔 내가 전투에서 피 칠갑이 돼 돌아올 때면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할 수가 없소`라고 하면 세령은 `제겐 더없이 그리운 사람입니다`라고 화답하는 식이다.

감각적인 영상은 `공주의 남자`의 백미였다. `공주의 남자`는 `추노`로 2010년 그리메상에서 대상을 받은 손형식 촬영감독과 단편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실험적이면서도 창백한 영상으로 주목받았던 이윤정 감독이 촬영을 맡아 질을 높였다. 영화 같은 명장면도 많다. 달리는 말에서 세령을 감싸 안고 뛰어내리는 승유의 모습, 승유 대신 화살을 맞고 쓰러지며 애절하게 승유를 바라보던 세령의 표정 등을 담은 방송분이 그 예. 영상은 우울하면서 아름다웠고 단조로운 듯 역동적이었다. 직장인 박건희(38)씨는 "`공주의 남자`는 기존 사극과 달리 대사톤과 영상이 세련되면서도 감각적이라 감성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윤정 촬영 감독은 "비극은 무겁게 로맨스는 화려하게 가는 쪽으로 손형식 선배가 콘셉트를 잡았다"며 "사극이지만 현대물에서 많이 쓰는 부감(높은 곳에서 내려다봄) 등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공주의 남자`는 `추노`를 찍었던 레드원(Red One)카메라보다 품질이 좋은 레드 엠엑스(Red MX) 카메라로 극 초반을 촬영했다. 그리고 콘트라스트(대비)를 많이 줘 색감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