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라울, 레알의 아이콘이 돌아왔다

by임성일 기자
2007.11.22 09:22:22

▲ 라울 [로이터/뉴시스]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적어도 근래에는 이처럼 산뜻한 출발도 드물었던 기억이다. 번번이 야심찬 선수영입으로 ‘허울만 좋은 스타군단’의 이미지를 벗고자 노력했던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경기력이, 성적이 일정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내로라하는 스타들이라도 새롭게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동안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던 까닭이다. 결국 뉴페이스들과의 보폭이 맞고 나서야 비로소 발동이 걸렸으니 꼭 정상문턱에서 한걸음 모자랐던 결과(2004~2006시즌/4위→2위→2위)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지난 시즌도 바르셀로나와 승점은 같으나(76점) 승자승 원칙에서 간신히 우위를 점했던 정상탈환이었다.

그랬던 레알 마드리드가 올 시즌 달라졌다. 시즌 개막과 함께 줄곧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일정의 1/3 정도를 소화한 현재(12R 9승1무2패)까지도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2007-08시즌을 앞두고도 레알 마드리드의 스쿼드는 퍽이나 많이 바뀌었다. 일단, 4년 만에 라 리가 우승을 되찾아준 F.카펠로 감독을 내치고 독일의 스타플레이어 출신 베른트 슈스터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오랫동안 왼쪽풀백의 복지부동이던 R.카를로스를 비롯해 에메르손, I.엘게라, J.우드게이트, R.브라보, F.파본, 시싱요 등 나간 이들이 부지기수고 허리라인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W.슈나이더를 필두로 J.사비올라, C.메첼더, A.로벤, R,드렌테 등 들어온 인물들도 만만치 않다.

앞선 어느 시즌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대규모의 선수이동인데, 이상스레 올 시즌은 시작부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공격수 일색이던 맹목적인 영입정책을 버리고 미드필더와 수비라인 보강에 신경 쓴 영향도 적잖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 클럽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라울의 활약상을 주목해야겠다. 1994년 레알 마드리드를 통해 데뷔한 이래 오로지 ‘백곰 군단’의 상징으로 활약해온 라울의 부활이 전체적인 상승세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한 1995-96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라울은 9시즌 내내 두 자릿수 득점포를 가동하며 레알 마드리드 부동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1998-99시즌(25골)과 2000-01시즌(24골)에는 라 리가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명실상부한 에이스다.



하지만 라울은 2003-04시즌 11골을 끝으로 2005년 9골, 2006년 5골 그리고 지난 시즌 7골에 그치며 평범한 공격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흔치 않은 프랜차이즈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Z.지단(은퇴), L.피구(현 인터 밀란), 호나우도(현 AC 밀란), D.베컴(현 LA 갤럭시) 그리고 지난 시즌 R.반 니스텔루이 등에게 간판선수의 위상마저 빼앗긴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12라운드 현재 전경기에 출전한 라울은 반 니스텔루이와 함께 6골로 팀 내 최다골을 기록 중이다. 35경기에서 7골을 뽑았던 지난 시즌과 비교한다면 ‘부활’이라는 표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단 골을 많이 넣고 있다는 가시적 성과가 레알 마드리드 상승세의 핵심은 아니다.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던 ‘구심점’을 되찾았다는 의미가 더 크다.

2003년 V.델 보스케 감독이 물러난 이후 올 시즌까지 레알 마드리드는 7번이나 감독을 교체했다. 평균 재임 기간이 1년이 안되니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바뀐 셈이다. 실패를 둘러싼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결국 수많은 보석들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핵심에 가깝다. 면면이 너무도 화려했던, 슈퍼스타들의 개성 혹은 자존심이 소위 ‘따로 놀면서’ 팀으로서의 응집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물론 감독만의 잘못은 아니다. 클럽하우스 내부의 중심축이 없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데, 신임 슈스터 감독은 이 문제의 해답을 라울에게서 찾았다.

앞선 감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라울의 역할비중과 신뢰도를 높였던 슈스터 감독의 판단은 옳았다. 클럽 유스시스템에서 성장한 골키퍼 I.카시야스를 제하고는 ‘굴러온 돌’ 일색인 스쿼드에서 유일하다 싶은 ‘박힌 돌’ 라울이 위상을 되찾으면서 이래저래 어긋났던 톱니가 제대로 물리고 있는 모양새다. 새로운 감독의 남다른 신뢰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라울이 당당한 캡틴으로 선수들을 통솔하고 있으며 이런 책임감이 개인적인 성취도로 이어지는 긍정적 순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 최고득점자 반 니스텔루이는 “살아있는 전설 라울은 팀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평가를 내놓았고 1년 이상 무적함대의 호출을 받지 못하고 있는 라울의 스페인 대표팀 발탁을 요구하는 여론도 심심치 않게 일고 있는 수준이다. ‘리더’가 되살아나면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환호 역시 달라졌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요컨대 레알 마드리드에 어울리는 리더가 되살아나면서 안팎으로 흥을 내고 있는 현재의 흐름이다.

1986~1990년까지 5연패 달성 이후 한번도 재현하지 못하고 있는 프리메라리가 연패의 꿈, 더불어 새 천년 이후 요원해진 챔피언스리그 권좌 복귀까지 노린다는 그들의 야망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중심에 서 있는, '돌아온 아이콘' 라울의 행보를 특히 주목해야겠다. / 베스트 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