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의 친구,야구]‘우연의 양탄자’ 로키스 vs '필연의 달구지’ 보스턴

by한들 기자
2007.10.23 09:20:54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월드시리즈가 25일부터 시작됩니다. 올 월드시리즈는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 콜로라도 로키스 때문입니다.

로키스는 정규 시즌 막판 14승1패, 포스트시즌 싹쓸이 7연승 등 21승1패를 거두며 치고 올라 왔습니다(1900년 이후 9월에 이런 초고속 상승세를 탄 것은 3팀 뿐이었습니다. 1916년 뉴욕 자이언츠 26승0패, 1935년 시카고 컵스 23승1패, 197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23승1패).

로키스와 10월의 합성어인 ‘록토버(Rocktober)’란 신조어가 생겨나고, 로키스는 이를 기념품 판매에 활용하기 위해 상표 등록 신청까지 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불과 달포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부조 4위를 면치 못했던 팀이 다섯 팀이나 제치고 폴 클래식의 정점에 설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적의 팀’이란 게 결코 과찬은 아닙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아메리칸리그의 카운터파트가 마침내 보스턴 레드삭스로 결정 나 이제 최고의 가을 야구 축제를 눈앞에 둔 시점서 ‘어깃장’이 발동합니다. 그것은 로키스가 과연 최고 축제의 듀오로서 합당한 팀이냐는, 거듭 곱씹게 되는 의문입니다. 아무리 ‘공도, 배트도 둥글다’는 의외성이 야구의 징표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로키스는 정규 시즌서 팀 타율 1위, 득점 2위에, 68개의 실책으로 수비 1위 등 좋은 기록을 냈습니다. 하지만 야구의 7할이라는 팀 방어율은 8위로 딱 중간이었습니다. 특히 선발 투수 중에서는 제프 프란시스(17승)와 자시 포그(10승), 달랑 둘만 두 자리 승수를 올렸을 뿐이었습니다. 불펜이 자랑이라고는 하는데 선발 투수들이 죽을 쑤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매스컴의 분석도 딱 집히는 게 없이 밋밋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적이라고는 다들 말하는데 내세우는 근거들은 지극히 일반론입니다. 몇 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인 팜 시스템, 성적 부진에도 꾹 참고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도록 기다려 준 프런트....



그나마 발견해낸 게 해발 1600m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해 공이 멀리 날아가는 쿠어스필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한 공 습도조절기, ‘휴미더(humidor)’ 효과입니다. 하지만 휴미더는 2002년부터 가동됐고, 2002~2006년 로키스의 평균 승률은 고작 4할4푼2리였습니다. 오히려 사용하기 이전 5년간(1997~2001년) 4할7푼8리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휴미더와 올시즌 성적과는 관계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키스가 21승1패를 올린 과정도 들여다보면 화려한 액면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다분한 것도 사실입니다. 로키스 전사들이 마지막 희망을 보았다는 9월19일 다저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 9회말 9-8 끝내기 승리(3연승)를 했을 당시 다저스는 어떤 팀이었습니까. 노장과 신예 선수들이 서로 콩을 빻겠다고 절굿공이를 놓고 드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챔피언십시리즈서 만난 애리조나는 또 어땠습니까. 선수들은 고교야구를 방불케 하는 풋내기 티를 에누리 없이 보여줬고, 감독은 팔짱만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 줬습니다.

로키스의 기적이야말로 스포츠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짜릿하고 위대한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필연을 내포하지 않은 우연의 연속은 우연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것은 스포츠도, 야구도 아닙니다. 수많은 우연들이 지들끼리 판치고 어울리다가 어쩌다 횡재를 낳는 도박판입니다.

클리블랜드전서 1승3패의 벼랑 끝까지 갔다가 필연의 4승3패 역전승을 거둔 보스턴과 막판 우연의 양탄자에 올라 타고 비상한 로키스의 대결이 어떤 결말을 낳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