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포토에세이]사진도 '님'에서 '남'이 될 수 있다
by김정욱 기자
2007.06.21 08:03:26
[이데일리 SPN 김정욱기자] '님이라는 글자에/점 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같은 인생사'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님'과 '남'. 언뜻 보면 쉽게 착각할 수도 있는 비슷한 글자지만 조그만 점의 위치에 따라 엄청난 의미의 차이가 생긴다.
사진에서도 이런 경우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얼짱' 사진이 되느냐, 아니면 '굴욕' 사진이 되느냐는 정말 한 순간의 차이로 결정된다.
멋진 배경을 앞에 선 어느 스타의 멋진 포즈와 예쁜 표정. 바로 전형적인 '얼짱 사진'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때 눈이 반쯤 감겨 있다면... 이 사진은 순식간에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굴욕' 사진이 되고 만다.
(이를 입증할 자료 사진은 정말 많다. 하지만 특정 스타를 '굴욕 사진'의 예로 들었을 때 발생할 형평성 문제 때문에 아쉽게도 공개하진 못한다)
보도 사진에서 작은 변화가 일으키는 인식의 차이는 단순히 외모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크게는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달라진다.
 | ▲ 단지 눈을 감고 떴을 뿐인데 사진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은마치 싸이가 눈을 감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
|
며칠전 가수 싸이가 병역특례 의혹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날 싸이가 현장에 들어와 성명서를 낭독하고 다시 나가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6분에 불과했다.
이 짧은 시간동안 사진 기자들의 셔터는 쉴새 없이 터졌고, 싸이의 여러 모습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위의 사진을 보면은눈을 감은 것이고, 은눈을 감지 않은 사진이다. 사실 싸이가 이 날 현장에서 과 같은 표정을 지은 것은 거의 1초도 되지 않는다. 성명서를 읽는 도중 잠깐 눈을 깜빡이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하지만 사진 한 장에 이날 행사장 분위기와 착잡한 심경으로 병역특례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싸이의 속내가 모두 담겨 있다.
 | ▲ 전도연과 송강호. 3번 사진은 '전도연에 집중된 질문에 굳은 표정 짓는 송강호'란 제목으로 기사를 써도 될만큼 송강호의 표정이 심각하다. |
|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 송강호와 함께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는 많은 질문이 전도연을 향해 쏟아졌다.
위 사진 중 은 송강호가 자신에게 질문이 오지 않자 지루해 하는듯한 인상을 준다. 또 사진만 본다면 전도연과 송강호 사이에 마치 큰 감정의 벽이 있는 듯한 냉랭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취재 현장의 분위기는 사진처럼 화기애애했다. 과 사진에서 송강호가 지은 어두운 표정은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힌 것 뿐이다.
| ▲ 이루마-손혜임 커플의 결혼 기자회견. 1번 사진속에 두 사람은 다정해 보인다기보다 서로 다툰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
|
얼마전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백년가약을 맺은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손혜임 커플. 이들은 결혼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내내 두 사람의 입가에선 행복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닭살스런 행동과 말들로 취재진들과 현장에 모여있던 관계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카메라가 잡은 모습에는 과 같은 환한 미소 뿐만 아니라 사진과 같은 위기(?)의 순간도 잡혀있었다. 사진만 보면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의 모습이 아니라 차마 언급하지 못할 다른 상황의 기사를 써도 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작은 시간의 차이로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사진의 내용. 그냥 가볍게 웃고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사진 중 잘못된 느낌을 주는 사진이 게재가 된다면 엄청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잘못 쓰인 기사 못지않게 사진 역시 엄정한 정확성과 진실성이 요구된다. 사진은 찍는 것만큼 어떤 것이 취재한 내용과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는지 정확히 선택하느냐도 중요하다.
흔히 '카메라는 정직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정확히 말하면 절반만 맞는 표현이다. 영상을 찍는 기계는 정직할지 몰라도 그 카메라를 다루고, 파인더에 잡힌 영상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은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잘못된 정보에 흔들린다.
사진 기자가 지녀야 할 언론인의 사명감과 책임이 다른 분야의 기자 못지않게 무거운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