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초보감독은 안돼' 편견 깨뜨린 이범호의 성공스토리
by이석무 기자
2024.10.31 07:28:52
| 이범호 KIA 감독이 29일 홀리데이인 광주호텔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 축승회에서 꽃목걸이를 걸고 있다. 사진=KIA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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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가을야구’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마지막에 웃은 팀은 ‘야구명가’ KIA타이거즈였다.
정규시즌 1위 팀 KIA는 지난 2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막을 내린 한국시리즈에서 삼성라이온즈를 4승 1패로 누르고 대망의 12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97년 이후 34년 만에 광주 홈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펼쳤다.
KIA의 2024시즌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즌 개막 전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임 김종국 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얽혀 자리에서 물러났다. 추후 누명이 벗겨졌지만 그 당시에는 팀을 이끌 수 없었다. 선수단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위기였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할 사령탑 없이 훈련을 시작했다. 전지훈련 도중 이범호 타격코치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일단 감독 경험이 없었다. 1981년생으로 나이도 어렸다.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 감독이 됐다. 팀 최고참 최형우보다 겨우 3살 많았다. ‘어린 초보 감독이 잘 해낼 수 있을까’ 물음표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어수선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모든 우려를 날려버리고 시즌 내내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범호 감독은 준비된 사령탑이었다. 소위 ‘타이거즈 순혈’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팀에 깊숙이 자리했다.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한 이범호 감독은 이듬해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 이때 KIA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를 호랑이 굴로 데려왔다. 이범호 감독과 KIA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선수’ 이범호는 선후배에 존경받는 선수였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드라마 같은 만루홈런을 터뜨려 KIA의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팀 리더로서도 만점이었다. 권위적인 선배는 결코 아니었다. 그의 리더십은 조용하고 차분하면서 단호했다.
9년간 KIA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지도자 생활도 KIA에서 쭉 했다. 2020년 스카우트로 시작해 2021년 퓨처스(2군) 감독 2022~2023년 1군 타격코치를 지냈다. 다양한 자리와 역할을 맡으면서 팀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선수와 프런트, 코치로 자리한 13년 경험이 ‘초보 감독’을 ‘우승 명장’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오래 있었다고 모두 다 아는 건 아니다. 제대로 알기 위해선 공부해야 한다. 그는 선수 시절 끊임없이 기술을 연구하고 데이터를 파고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큰 경기, 결정적인 순간에 강했다. 슬럼프도 길지 않았다. 스스로 계속 돌아보고 문제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2019년 은퇴 당시 “공부 많이 하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 약속은 지금까지도 채찍질이 됐다.
심재학 KIA 단장과 1대1 화상면접 인터뷰에서 이범호 감독은 대기업 프레젠테이션처럼 다양한 데이터를 만들어 선수 기용 계획을 설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진짜 경험은 머릿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경험을 통한 교훈이 실천을 통해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
올해 이범호 감독의 성공은 ‘초보 감독은 안돼’라는 편견을 깨뜨린 성과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더 잔상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