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강화위원회도 '클린스만 경질' 한목소리...그런데 회장은 어디?
by이석무 기자
2024.02.16 00:00:00
|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24년도 제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의 경질을 협회에 건의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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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앞에 축구 팬이 항의의 뜻을 담아 보낸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이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의 경질을 협회에 건의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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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열린 2024년도 제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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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열린 2024년도 제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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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는 취재진과 축구팬들로 북적댔다. 일부 흥분한 축구팬들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도 배치됐다.
이날 축구회관에선 아시안컵 졸전 탈락과 대표팀 선수단 내분 사태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한국 축구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미하엘 뮐러 전력강화위원장과 전력강화위원 7명이 회의에 직접 참석했다. 아시안컵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국가대표팀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채 화상으로 참여했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회의 후 브리핑을 열어 “여러 가지 이유로 클린스만 감독이 더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위원회의 판단이 있었고,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지난달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다. 기대와 달리 조별리그부터 졸전을 거듭한 끝에 이달 7일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0-2로 허무하게 패하면서 탈락의 쓴맛을 봤다.
비난의 화살은 클린스만 감독에게 쏠렸다. 역대 최고 전력을 살리지 못했다는 경기력에 대한 비판은 물론 잦은 해외 체류를 비롯한 태도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국민적인 요구가 들끓었다. 심지어 축구와 상관없는 정치권에서조차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과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지도자의 해임과 관련해 조언 및 자문을 하는 역할의 기구다. 직접 해임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회의 의견을 종합해 정몽규 회장 등 집행부에 보고한다.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 또는 유임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정몽규 회장이다.
이 급박한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 정몽규 회장은 종적을 감췄다. 협회 규정상 회장은 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비상사태다. 자칫 한국 축구가 뿌리째 뽑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휘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회의가 끝난 뒤 클린스만 감독 경질에 대한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왔다. 회의가 진행 중이던 시간에 정몽규 회장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협회 관계자 브리핑이 나오자 취재진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3일 열린 경기인 출신 임원들의 자유토론 회의에서도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처럼 의견이 모였다면 빨리 결단을 내리고 다음 챕터로 나가야 하는데 집행부 수장인 정몽규 회장의 머릿속은 오리무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젠 비난의 화살이 정몽규 회장에게 쏠리는 모습이다. 이날 전력강화위원회 회의가 열린 축구회관 앞에선 클린스만 감독 경질과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 사퇴를 촉구하는 팬들의 집회가 벌어졌다.
공식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정몽규 회장이 빨리 최종 결정을 내리고 다음 스텝을 밟는 것이다.
축구협회는 지금 숙제가 많다. 축구팬을 분노하게 만든 선수단 내분 사태 역시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 찢어질 대로 찢어진 태극마크의 자존심과 끓어오르는 팬심을 봉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표팀을 정상화하고 현재 진행 중인 북중미 월드컵 예선을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축구협회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는 일마다 헛발질이다. 지난해 각종 비위 혐의로 징계를 받은 축구인 100명의 셀프 사면을 결정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 16강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 불거진 ‘트레이너 폭로 사건’은 한국 축구의 업적을 스스로 깎아 먹는 ‘자책골’이나 다름없었다.
파울루 벤투 전임 감독을 떠나보내고 클린스만 감독을 영입하는 과정 또한 투명하지 못했다. 과거 그의 행적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축구협회는 그런 비판을 무시했다. 그런 원활하지 못했던 과정들은 오늘날 큰 역풍으로 돌아왔다.
이번 아시안컵 선수단 내부 분란 사태만 봐도 협회의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선수들 잘못은 분명하지만 외신 보도를 빠르게 인정하고 오히려 새로운 정보들을 밝히며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독 경질이나 축구협회 쇄신과 관련된 얘기에는 묵묵부답이었다가 외신 보도에만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협회로 쏠리는 비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쓴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계속 갈팡질팡한다면 차라리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현 집행부가 물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옛말처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면서 “적어도 지금처럼 문제를 피하고 도망 다니지 말고 전면에 나서 책임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