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받이'로 추락했던 조규성이 되살린 한국 축구의 희망

by이석무 기자
2024.02.01 00:01:00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조규성이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 포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어떤 상황에서든 골을 넣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언젠가 기회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 공격수 조규성(26·미트윌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승리를 견인한 뒤 비로소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월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극적으로 8강행 티켓을 따냈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최종 목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경기력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승리는 언제나 기쁘고 값지다. 오늘의 승리는 내일 더 높이 날아오를 발판이 된다.

후반 종료 직전까지 대표팀은 패색이 짙었다. 후반 1분 압둘라 라디프(알샤바브)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대표팀은 좀처럼 만회 골을 넣지 못했다. 탈락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후반 종료 직전 대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후반 추가시간 10분 가운데 9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 팀 동료 설영우(울산 HD)의 헤딩 패스를 받은 조규성이 헤더 골을 성공시켰다. 조규성의 동점골 덕분에 기사회생한 대표팀은 연장전과 승부차기 끝에 골키퍼 조현우(울산 HD)의 두 차례 선방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를 꺾었다.

조규성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낳은 ‘깜짝 스타’였다. 가나와 2차전에서 머리로 2골을 책임지면서 일약 한국 축구의 희망이 됐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꿈에 그리던 유럽 무대 진출도 이뤘다.



조규성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선수 인생 최악의 경험을 맛봤다.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부진을 면치 못했다. 월드컵 당시 그를 열렬히 응원했던 팬들은 180도 돌변했다. 그의 SNS를 찾아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플 세례를 퍼부었다.

조규성은 그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조차 “제발 선수들을 흔들지 말아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할 정도였다.

조규성은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매특허인 헤딩으로 기어코 골망을 흔들었다.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과 욕설을 ‘실력’으로 날려버렸다.

대표팀 입장에선 8강에 오르긴 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조별리그부터 드러난 불안요소는 16강전에서도 여전했다. 수비는 4경기 연속 실점을 내주며 계속 흔들렸다. 공격은 22개 슈팅을 때리고도 1골에 그칠 정도로 답답했다.

체력적인 소모도 심하다. 한국은 2월 3일 오전 0시 30분 호주와 8강전에서 만난다. 호주는 우리보다 이틀을 더 쉬고 8강전을 치른다. 반면 우리는 단 이틀만 쉬고 다시 경기에 나서야 한다.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올라왔더라면 일정상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지만 조 2위로 진출하면서 빡빡한 일정을 받았다.

희망적인 부분은 선수들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전 동점 골도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가능했다. 가라앉았던 대표팀 분위기는 16강전 승리로 다시 살아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전 승리 후 “8강전까지 남은 시간이 적지 않다.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긴 시간이다”면서 “오늘 승리가 팀 분위기에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이 선수들과 함께하는 게 행복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