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되면 고개숙였던 커쇼, 올해 가을은 활짝 웃었다

by이석무 기자
2020.10.29 00:01:04

LA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가족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AP PHOTO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가을만 되면 늘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 숙인 모습이 익숙했던 LA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32). 하지만 올해 가을은 달랐다. 그는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든채 환하게 웃으며 가족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커쇼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드디어 현실로 이뤄졌따.

다저스는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3-1로 누르고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을 확정했다.

햄스트링 부상을 입은 커크 깁슨이 극적인 대타 홈런을 치고 다리를 절면서 베이스를 돌았던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1988년 월드시리즈 이후 3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었다.

모든 다저스 선수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보다 우승이 반가운 이는 바로 커쇼였다. 2008년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다저스의 전설적인 대투수 샌디 쿠팩스와 비견할 최고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에서 통산 175승 76패 평균자책점 2.43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도 3차례나 수상했다.

하지만 가을만 되면 커쇼는 평범한 투수가 됐다. 지난 시즌까지 포스트시즌 32경기에 나와 9승 11패 평균자책점 4.44에 불과했다. 월드시리즈에선 더 부진했다. 월드시리즈 성적은 5경기서 1승 2패, 평균자책점 5.50이었다.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로 나와 7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잡으며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된 게 월드시리즈 유일한 승리였다.

하지만 이번 월드시리즈에선 눈부신 호투로 ‘가을야구 징크스’를 이겨냈다. 지난 월드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 이후 3년 만에 맛본 월드시리즈 선발승이었다.

이어 커쇼는 26일 5차전에서도 5⅔이닝 5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해 팀 승리를 견인했다. 커쇼와 워커 뷸러, 단 2명 외에 변변한 선발투수가 없었던 다저스는 커쇼가 혼자 2승을 챙겨준 덕분에 월드시리즈 우승이 가능했다.



투구 내용도 압도적이었다. 커쇼는 월드시리즈 2경기에서 삼진 14개를 잡았다. 이로써 포스트시즌 개인 통산 탈삼진을 207개로 늘려 저스틴 벌랜더(205탈삼진)를 제치고 역대 1위로 올라섰다.

월드시리즈 뿐만 아니라 커쇼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하며 다저스이 포스트시즌 질주를 앞장서 이끌었다. 에이스가 큰 경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줬다.

커쇼는 경기 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오늘 우리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올해 우승팀은 다저스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다저스 유격수 코리 시거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에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도 MVP에 뽑혔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20타수 8안타 타율 .400 2홈런 5타점 7타점을 기록한 시거는 만장일치로 MVP에 선정됐다.

같은 해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MVP를 독차지한 것은 시거가 역대 8번째다. 앞서 1979년 윌 스타젤(피츠버그 파이리츠), 1982년 대럴 포터(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88년 오렐 허샤이저(다저스), 1997년 리반 에르난데스(플로리다 말린스), 2008년 콜 해멀스(필라델피아 필리스), 2011년 데이비드 프리즈(세인트루이스), 2014년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이같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아울러 시거는 1978년 버키 덴트(뉴욕 양키스), 1984년 앨런 트라멜(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0년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 데이비드 엑스타인(2006년 세인트루이스), 2010년 에드가 렌테리아(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역대 6번째로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한 유격수가 됐다.

시거는 “올해 우리 팀은 정말 놀라운 일을 해냈다. 팀의 일원으로 정상에 올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