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걸그룹]①행사가 주무대지만 꿈은 폄훼 말아주세요

by김은구 기자
2019.05.17 06:00:30

식스밤(사진=페이스메이커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운영되는 방식이 다를 뿐 우리도 걸그룹이에요. 꿈까지 폄훼하진 말아주세요.” 걸그룹 식스밤의 항변이다. 행사, 이벤트 시장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걸그룹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떠오른 탓이다.

최근 MBC 시사·교양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서 걸그룹 베이비부 두 멤버가 3~4년간 행사 무대에 500번 올랐지만 정산을 못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들과 비교해 ‘언더 그라운드 아이돌’, ‘지하돌’이라고 부른다. 이들 앞에 크고 작은 각종 공연을 장식한다는 의미로 ‘행사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산도 안하고 계약 해지도 안하는 소속사에 대한 비난이 늘었다. 일각에서는 “베이비부라는 걸그룹이 있었어?”라는 반응도 있다. 일명 ‘행사돌’의 경쟁은 주요 기획사들의 아이돌 그룹들 못지 않게 치열하다. 식스밤, 포켓걸스, 밤비노, 페이머스, 데스티니, 레이샤 등이 해당 시장에서 손꼽힌다. ‘행사돌’이 전국에 100팀 이상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베이비부, 식스밤 모두 대중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베이비부가 1년 평균 100회가 넘게 무대에 올랐다는 건 그 만큼 활발히 활동을 했다는 방증이지만 그들의 공연은 더 많은 대중이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을 타지 못했다. 대중이 ‘걸그룹’으로 인지하는 팀들은 대부분 음악순위프로그램을 포함한 방송, 음원차트, 매체 보도를 통해 활약상을 접하게 된다.

◇ ‘행사’ 시장서 치열한 경쟁…그들만의 리그

‘언더그라운드 아이돌’로 불리는 ‘행사돌’은 데뷔 쇼케이스, 음악 순위프로그램 출연 경험이 있는 걸그룹들도 많다. 행사돌은 주로 지방자치단체, 기업체, 각종 협단체 등이 주최하는 행사, 대학 축제, 군부대 위문공연 등에서 활동한다. 그 시장을 놓고 행사의 메인 무대를 장식하는 것은 대부분 인기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다. 이들은 행사 시작 전 분위기를 띄우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낮은 개런티를 받더라도 자주 무대에 오르는 게 이들의 생존방식이다. 지난 2017년 미디어 쇼케이스도 개최한 이후 한 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소식을 전하지 않은 레이샤의 경우 공식 SNS에는 행사 일정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다. 이들 외에 특정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팀들도 있고 댄서들로 구성돼 커버댄스를 하던 팀들이 개런티를 높이기 위해 노래를 발표하고 경쟁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언더그라운드 아이돌’에는 보이그룹도 많다. 국내 행사 시장을 공략하는 경우는 드물고 일본 도쿄 내 K팝 로드가 형성된 신오쿠보 등지에서 소극장 공연을 한다.

◇ 메이저 못잖은 ‘열정’



주요 기획사들만큼의 자금력이 없다 보니 장기간 연습생들을 트레이닝시키며 다양한 시도와 검증을 해볼 여력이 없다. 아이돌 그룹들의 제대로 된 콘셉트 기획, 홍보 등에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환경이 열악하지만 꿈에 대한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이어가고자 이 길을 선택했다.

‘행사돌’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것은 객석에서 얼마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느냐다. 객석의 반응은 해당 그룹의 인지도를 대변하고 개런티로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섹시 퍼포먼스, 의상 경쟁이 과열되기도 한다. 인기가 있는 그룹은 이동 거리에 따라 많게는 400만~500만원도 받지만 신인급, 인지도가 낮은 팀은 100만원 이하를 요구해도 기회를 잡기가 힘들다. 인지도를 쌓기 위해 초기에는 무료 공연을 감수하기도 한다.

정산, 부당대우 등은 일각의 문제일 뿐이며 단편적인 사례로 업계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스밤도 “정산은 잘 이뤄지고 있다”며 “소속사에서는 정산금액이 크지 않아 틈날 때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멤버들의 상황을 고려해 개런티가 입금이 되면 당일 정산해주는 방식으로 시스템도 바꿔줬다”고 설명했다. 정산 등과 관련한 잡음은 메이저라고 불리는 시장에서도 간혹 불거지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행사 한번에 많게는 수천만원에서 억대까지 받는 인기 아이돌 그룹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런티가 적은 게 이들의 가장 큰 문제다.

인기는 낮지만 이들은 저마다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행사돌’ 멤버들은 대부분 가수 지망생이었다. 연습생이 되기 위한 오디션에서 수차례 고배를 든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꿈, 노래로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겠다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응원과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아직 인기 가수들처럼 노래로 큰 돈을 벌지 못하고 남들이 인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내세우는 직업은 ‘가수’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계속 실력을 다져가야 언젠가는 더 큰 무대에 설 기회도 잡을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열정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걸그룹 레이샤가 지난 2017년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포켓걸스(사진=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