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전 통해 본 '진짜 스몰볼'의 조건
by정철우 기자
2013.03.09 09:09:03
| 일본의 극적인 역전승 소식을 전하고 있는 일본 스포츠 신문(닛칸 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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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돔(일본)=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고 있는 일본 대표팀은 한국 대표팀과 사정이 비슷하다. 메이저리거가 모두 빠져나가며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거포부재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네 경기를 치렀는데 단 한개의 홈런도 때려내지 못했다. 2루타마저도 이토이가 친 2개가 전부다. 1라운드에서 탈락한 축구의 나라 브라질보다도 장타력이 떨어진다.
투수진은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선수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크게 무너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투수들의 기량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계산이 서는 마운드 운영이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의 승리 공식은 스몰 볼을 중심으로 한 지키는 야구가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8일 대만과 2라운드 첫 경기서는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경기였다. 2-3으로 뒤진 9회초 2사1루서 기습적인 2루도루 후 적시타 등의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며 4-3으로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내용 자체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상 일본이 패했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경기였다. 8회 이전까지 일본은 실로 무기력 그 자체였다. 선취점을 먼저 빼앗기며 끌려가는 경기에선 좀처럼 활로를 찾기 힘든 것이 지금의 일본 대표팀이다.
때문에 보다 세밀하고 짜임새 있는 야구, 그야말로 진짜 스몰볼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일본 벤치는 그 만큼의 역량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스몰볼의 정수를 보여줄 만큼의 준비와 전략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2-2로 극적인 동점을 만든 8회말, 다시 1점을 빼앗겼다. 이전 2이닝에서 무려 4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호투하던 에이스 다나카가 아웃 카운트 하나 못 잡은 채 2루타 1개 포함, 3연속 안타를 얻어맞은 것이 치명타였다. 이후 야마구치와 사와무라가 계속된 위기를 실점 없이 넘겼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잘 던지던 투수, 그것도 에이스의 투구수가 20여개에 불과한 상황. 바꾸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치밀한 야구, 즉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주는 세심함이 동반됐더라면 다른 선택도 가능했다.
일본은 8회초 공격에서 1라운드서 전혀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던 4번 포수 아베가 적시타를 치자 대주자로 교체했다. 8회말 부터는 아이카와가 대신 마스크를 썼다. 수비형 포수인 아이카와의 기용 역시 표면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야구였다.
하지만 투수 출신 전문가들의 시선은 달랐다. 포수가 바뀌었을 때 다나카도 교체를 했어야 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현역시절 투혼의 상징이었던 구와타 TBS WBC해설위원(전 요미우리)은 “다나카는 좋은 공을 던졌다. 나쁜 결과를 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포수가 바뀌었을 때 교체됐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나도 현역시절 중요한 상황에서 포수가 교체되면 뭔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카와가 좋은 포수인지 나쁜 포수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투수의 중압감을 이해해 주었다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닛칸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인 사사키(전 시애틀)도 지면을 통해 “포수가 바뀌었을 때 다나카가 바뀌지 않은 장면이 아쉽다. 다나카 뒤에도 지켜줄 수 있는 투수들이 남아 있었던 만큼 함께 교대해 주었어야 한다고 본다. 경험상 이닝 교체와 함께 포수가 바뀌면 곧 실점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고 설명했다.
야구가 그런 것 처럼 투수 교체 역시 정답은 따로 없다. 하지만 그저 “(다음 투수의)컨디션이 좋아서”라거나 “(앞 투수의)투구수가 많지 않아서”라는 설명만으로 ‘결과론만 갖고 따지지 말라’고 선을 긋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고의 팀이 구성되지 못한 건 감독의 불운이지만 그런 팀 속에서도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감독의 숙제이자 책임이다.
투구수 제한이 엄격한 WBC는 에이스 한 명에게 경기를 맡기기 힘든 대회다. 그만큼 투수 교체의 성패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일본 처럼 장타력이 크게 떨어진 탓에 지키는 야구를 해야 하는 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진짜 스몰볼 만이 이기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장타를 펑펑 때려내며 언제든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팀이라면 이런 고민을 덜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가진 힘이 부족하다면 그 부분을 만회할 더 많은 노력, 특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저 투구수나 경기 상황에 따라 투수를 바꾸거나 번트를 대는 것이 스몰볼이 아니다. 스몰볼의 정수는 선수의 작은 동요까지 읽어내며 상대의 흐름을 미리 차단하는 야구다. 숫자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수학이 아니다. 진짜 스몰볼은 보는 이들에게도 화끈함 그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다.
스몰볼이 다시 대세로 굳어진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꼭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