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 영화 리뷰]'벤자민 버튼...'은 '포레스트 검프' 복제판?

by김용운 기자
2009.02.07 08:50:00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뉴올리언스로 허리케인이 북상하는 밤.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초로의 할머니는 딸에게 그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일기장을 펼친다. 할머니는 딸에게 일기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부탁한다. 딸은 운명의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어머니를 위해 일기장을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일기장은 어머니의 일기가 아니었다.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분)이라는 한 남자의 일기장이었다. 딸은 일기장을 넘기며 어머니와 벤자민 버튼 사이에 있던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감독 데이빗 핀처)의 시작은 이처럼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1997년 작 ‘타이타닉’과 닮아 있다. 할머니가 된 여자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며 영화가 시작되는 방식이 같아서다.

그러나 여자주인공 데이지(케이트 블란쳇 분)의 기억과 함께 펼쳐지는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4년작 ‘포레스트 검프’와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벤자민 버튼의 인생 역시 검프(톰 행크스 분)처럼 어렸을 적 첫사랑이었던 데이지를 위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벤자민 버튼이 데이지에게 남긴 일기장을 연대기 순으로 읽어주는 것으로 전개된다. 갓난아이가 아닌 늙은이의 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노인 요양소로 버려졌지만 요양소의 보모인 퀴니에 의해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를 만나러 온 데이지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데이지는 버튼의 외모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고 친구로 대했다. 그때부터 벤자민은 데이지를 평생의 연인으로 삼고 그녀의 이름을 앞에 놓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영화는 벤자민 버튼과 데이지의 엇갈린 인생을 보여주며 두 남녀의 인생을 통해 삶과 사랑 그리고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정상적으로 늙어가는 데이지와 늙은 몸으로 태어나 젊은 몸으로 죽어가는 벤자민 버튼을 대비시키며 삶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강물 흐르 듯 담아낸다.
 
‘세븐’과 ‘파이트 클럽’에서 보여주었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염세주의적인 분위기는 영화 포스터에서만 흔적이 남아있을 뿐 이번 작품에서는 감지하기 어렵다. 또한 요소요소에 적절한 위트와 코믹한 요소를 넣어 166분의 긴 상영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간다' 중 한 장면

영화는 유장한 스토리와 함께 백발이 성성한 브래드 피트가 십대 꽃미남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소소한 재미를 안긴다. 십대의 벤자민 버튼으로 분한 브래드 피트의 모습은 머리가 벗겨진 노인으로 분장한 브래드 피트의 모습보다 훨씬 더 경이(?)롭다.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 또한 날아갈 듯 늘씬한 20대 발레리나부터 80대 할머니 역까지를 특수분장의 도움으로 더없이 완벽히 소화해냈다. 

사실, 영화의 흐름이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시나리오를 쓴 에릭 로스의 영향도 크다. 에릭 로스는 ‘포레스트 검프’로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거머쥐었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미국 근현대사와 조우하는 방식은 ‘포레스트 검프’나 ‘벤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나 흡사하다. 비록 벤자민은 검프처럼 미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개입하지는 않지만 2차 세계대전이나 아폴로호가 달로 쏘아 올려 졌던 순간을 자신의 인생에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2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노인의 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이 성장하면서 점차 젊어지다 결국 아이의 몸으로 삶을 마치는 모습을 소설에 담았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는 전언 때문이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2월 22일 열리는 제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총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이는 1997년 ‘타이타닉’ 보다 1개 부문 부족한 기록이며 공교롭게도 ‘포레스트 검프’가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미네이트 된 기록과 같다. 12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