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걸렸다"…권역응급센터 외면하던 빅5병원, 이번엔 줄신청[only 이데일리]

by안치영 기자
2026.05.15 17:42:55

상급종병 재지정 평가 영향
권역센터 운영 실적 반영 가능성
복지부 “지역 의료기관 우선 지정”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그동안 “환자 쏠림만 심해진다”며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을 외면해온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들이 올해 일제히 권역센터 지정 신청에 나섰다. 의료계에선 권역응급센터 지정이 상급종합병원 평가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만큼, 병원들이 상급종병 지위를 유지해 수익 감소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사진=각 병원)
15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권역센터 신규 지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들도 모두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들은 거의 다 신청했다고 보면 된다”며 “현재 지역응급의료센터인 상급종합병원들도 대부분 지원했다”고 말했다.

권역센터는 중증 응급환자를 24시간 전담 치료하는 최상위 응급의료기관이다. 국내 응급의료체계는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1995~1996년부터 권역 단위 전달체계가 구축되면서 본격 운영됐다. 현재는 권역센터와 지역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들은 그동안 권역센터 지정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이미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권역센터까지 맡게 되면 응급환자 집중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은 제도 도입 이후 단 한번도 권역센터를 신청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의료계에서는 올해 진행되는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평가가 병원들의 태도 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급종병은 암·심뇌혈관질환 등 고난도 중증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국내 최상위 의료기관이다. 현재 전국 47곳이 지정돼 있으며, 정부는 3년마다 평가를 통해 재지정한다. 복지부는 오는 7월 신청을 받은 뒤 연말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복지부는 이번 평가에서 중증환자 비율 기준을 기존 34%에서 38%로 상향하고, 경증환자 비율은 7% 이하에서 5% 이하로 강화했다. 보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많이 치료하는 병원 중심으로 체계를 재편하겠다는 취지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운영 여부 역시 중증의료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상급종병 지정 여부는 병원 경영과도 직결된다. 상급종병은 일반 종합병원과 같은 진료를 하더라도 건강보험 수가에 가산이 5% 더 붙는다. 빅5 병원의 연매출은 1조원이 넘는데, 지정에서 탈락할 경우 연간 수백억원 규모의 수익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한 지방 대학병원 관계자는 “상급종병 지위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가 병원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다만 복지부는 지역 의료기관 우선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서울 제외)에서 이미 권역 역할을 수행해온 병원들을 우선 지정할 계획”이라며 “지역 센터를 먼저 채운 뒤 서울 지역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정갈등 비상진료 체계 당시 거점 역할을 맡았던 병원들에 대해서도 우선권이나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상급종병 재지정 평가와 연계되다 보니 권역센터 지정 신청이 크게 늘었다”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권역센터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많았는데, 병원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태도가 급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