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경은 기자
2019.01.30 22:00:09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일본 교도통신과 미국 AP통신 등 외신도 30일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과 추모 분위기를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 참가자 수 백명이 김 할머니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며 할머니의 삶에 관해 보도했다.
AP통신은 “김복동 할머니는 거의 30년 가까이 매주 수요집회를 이끌었다”며 “향년 92세로 지난 월요일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이어 “김 할머니는 전쟁 기간 일본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수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라며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오직 23명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은 “김 할머니는 인권 운동가이자 일본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상징적 인물”이라며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경험과 연계해 전쟁 기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 할머니는 매주 이어지는 ‘수요집회’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폐기와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고 했다.
교도통신은 김 할머니가 1992년 공개적으로 위안부 피해를 드러냈다며, 박근혜 정부 시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근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도 소개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을 하기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세 분을위해 도리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를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1992년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위안부 사실을 증언했고,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김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인 1940년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이후 1947년 귀향했다.
한편 김 할머니는 1년여 동안 암 투병을 해왔으며, 3주 전부터 병원에 재입원해 마지막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9월에는 투병 중에도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촉구하는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 1호실에 마련됐다. 29일 오전 11시부터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